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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한민국개조론>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를 읽으면서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저 허탈한 웃음이었습니다.

<대한민국개조론>의 서문을 통해 유시민은 이 책이 국민께 보내는 단성소라고 말합니다. 히틀러를 뽑은 국민에게 직소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합니다. 하도 얼척없는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차용하고 있는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유시민은 <대한민국개조론>을 조선시대 선비 남명 조식이 명종께 상소한 ‘을묘사직서’로 시작합니다.

흔히 ‘단성소’라고 불리는 이 상소문은 단단한 선비의 기상과 충직한 신하의 면모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읽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글입니다. 유시민 또한 “조선시대 재야 지식인의 서슬 푸른 기개와 위민정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보인 명문”이다며 이 상소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페이지에 걸쳐 ‘단성소’와 조식의 기개에 대해 찬탄을 늘어놓던 유시민이 갑자기 “대한민국의 왕은 국민이다”고 외칩니다. “늘 가슴에 품고 사는 위대한 선언“이라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1조를 하늘 높이 치켜들면서입니다.

지켜보는 이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소문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글입니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유시민이 조식의 상소문을 들고 나올 때, 보통 사람이라면 으레 대통령에게 무슨 쓴소리를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직언을 하지 못한 유시민 자신에 대한 반성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여겼을 법 합니다. 세칭 ‘왕의 남자’ 유시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반성을 기대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유시민은 엉뚱하게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고 설레발을 칩니다. 그러면서 “국민이 주권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고 목에 핏대까지 세우면서 울부짖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어리둥절할 수밖에는요.

(중략하고)
그러니까, 유시민이 ‘단성소’를 들고 나와 횡설수설하고 있는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450여년 전 남명 조식은 죽을 각오로 왕에게 국정을 똑바로 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지금은 국민이 왕인 시대다. 나, 유시민은 남명의 서슬 푸른 기개와 위민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이 시대의 왕인 무지랭이 국민에게 감히 상소한다. ’왕 노릇 똑바로 하라‘고. ’지식인과 언론인에게 속지 말고 나 유시민을 믿어야 한다‘고. ’믿고 따라야 한다‘고.



이를 위해 유시민이 차용하는 것은 논리가 아닌 감성, 곧 비장함입니다. 비장함은 그가 국민 일반을 향해 뭔가 '한 껀' 할 때마다 으레 써먹곤 하는 그의 전매특허입니다(이에 대한 내용은 정통고품격서비스님이 쓴 '유시민의 단성소 논리' 라는 포스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는 비장함이 뚝뚝 묻어납니다. ‘국민(國民)’과 ‘만인(萬人)’이 다르다는, 궤변 그 자체인 희한한 논리 앞에서도 사람들이 광분하는 까닭입니다(내가 히틀러를 떠올리는 것은 오히려 이 지점입니다. -_-). (다시 중략하고)

에니웨이, 유시민의 이 비장미 넘치는 상소궤변에 감읍한 국민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고 파도가 됩니다. <대한민국개조론>은 이내 인터넷을 차고 넘칩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자’고, ‘유시민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난리도 아닙니다. 자가발전하는 감동의 목소리는 거의가 한결같습니다.



대왕개미님!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범죄자에게 권력을 준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같은 무지랭이 국민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의 무지를 반성하고 각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유시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국민 개미떼 여러분! 유시민을 믿고 따릅시다! 블라블라~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문득 신유집회를 행하는 어느 광신교도의 무리가 생각납니다. -_




<덧붙이는 글>

1. 새로운 일을 하나 준비중인 터라 바쁘기도 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괜한 액이 낄까싶어서, 가능하면 '까칠한' 글은 쓰지 않으려 하고, 실제로도 쓰지 않고 있는데,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부끄러움 하나 없이 너무 당당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척이 없어 한마디 해봤습니다. 다만, 유시민이 하고 있는 얘기가 얼마나 제멋대로인지를 일일이 보여주는 일은 접기로 합니다. 솔직히 시간이 아까워서입니다. 물론 유시민이 (한 얍삽하는 칭구라 그럴 리 없겠지만 -_-) 청한다면 언제 어떤 자리 어던 방식으로라도 기꺼이 그의 논변이 궤변임을 적시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2. 위의 글은 원래 유시민이 자신의 홈피에 '<대한민국 개조론>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 원문'이라며 공개한 날 '유시민의 대한민국개조론'이라는 타이틀로 포스팅된 글입니다. 곧 이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하는 글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일에 쫓겨 지내는 바람에 잊고 지내다가. 오늘 오랜만에 이곳에 포스팅을 하려다보니 눈에 띄길래 옮겨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