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진보가 요 왜 모냥 요 꼴이냐는 얘기를 하면 으레히 돌아오는 답이 하나 있다. 진보의 역사가 일천한 때문이라는 대답이다. 한마디로 넌센스다. 지롤 쌈 싸먹는 소리라는 얘기다.

이같은 답을 하는 친구들이 자주 기독교를 가리켜 '개독'이라며 욕을 퍼부어댄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욕지거리 싸지르고 다닐 시간은 있으면서도 기독교가 왜 그렇게 번성했는지에 대해서는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왜 그렇게 번성하고 있는가? 여러가지 분석과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빠질 수 없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장 낮은 데서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이들, 곧 바로 자신의 이웃을 찾아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개척교회를 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작은 콩 쪼가리 하나도 나눠먹고 이웃이 헐벗으면 자신도 기꺼이 헐벗기를 마다 하지 읺는다. 그렇게 그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을 만나 그들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결과가 바로 '개독'이라 불리는 기독교의 가장 큰 성장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 시각에 이 땅의 진보연 하는 세력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가?
이들이 그렇게 애지중지해마지 않는 저 좃선일보의 첫 글자 붙잡고 깊이 함 생각해볼 일이다.


단독대표로 선출된 노회찬 대표 [출처: 진보신당]

단독대표로 선출된 노회찬 대표 [출처: 진보신당]


진보연 하는 친구들이 또 자주 들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동학농민운동이다. 이번에는 존니 추켜세우는 지점에서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그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학농민운동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른바 지금 진보연 하는 친구들이 부르대는 '진보 20년'이면 진보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 시대 아니던가?

동학농민운동이, 그 성패 여부를 떠나서 민중의 지지를 받아 운동으로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저 기독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그 운동이 민중속으로 들어간 때문이다. 동학농민운동은 몇 몇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가장 낮은 데 위치한 민중과 함께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 20년 동안 이 땅의 진보세력은 무엇을 했던가? 민중과 함께 하긴 커녕 쥐뿔 잴 것도 없는 치들이 앞에 나서 잰 채를 하며 설레발을 쳐대며 민중을 희롱하고 농락해왔을 뿐이다. 민중이 쟁취한 민주화의 성과마저 자기들이 이룬 것인 양으로 부르대며 민중과는 철저히 이반되는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이 땅의 이른바 진보세력은 그렇게 민중과는 유리된 채 귀족노조에 빌붙어 그들에게 아양을 떨어대는 짓으로 호구지책을 삼아왔다. 이런 상황이니 뭘 어떻게 하겠다는 자신의 비전이 있을 리가 없다. 장기적인 전략이고 전술 따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판이니 허구헌날 독재타도나 외치고 건건마다 종주먹 들이대며 딴죽을 거는 일로 날을 지샐 밖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 주제에 또 입으로는 또 입술이 부르트도록 민중을 부르대고 있으니, 이 친구들은 민중이 무슨 지네들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갖고 노는 호구인 줄 아는 모양이다. 분명히 하자. 민중은 이른바 진보한다는 친구들이 갖고 놀만큼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 아니다.

무튼, 저 윤똑똑이들이 벌이는 진보놀음이 이제는 블로고스피어에까지 만연해 있는 모냥새다. 아무리 봐도 자기 이웃 하나와도 함께 하지 못 할 성부른 웃기잡는 친구들이 자칭 진보를 부르대면서 울타리 두르고는 그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앉아 방구석 진보의 맹탕 헛소리만 지끼고 자빠졌다. 이 땅의 진보가 진보하고자 한다면, 도대체 이런 자들부터 먼저 경계하고 나아가 교육할 일이다.

에니웨이, 이 땅의 진보가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민주의도도 독재타도도 아니다. 가장 낮은 데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민중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진보하고싶은가?
그렇다면 왼갖 희번득한 헷소리 접고 지금 당장 민중 속으로 진보하라.




 
<덧붙이는글>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로 새 출발을 했다는 소식이다. 노회찬 대표의 취임사 전문을 옮긴다. 원래는 노 대표의 취임사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글을 써볼 요량이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취임사를 듣보며 든 생각을 횡발수발 늘어놓는 걸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