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거시기’한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말 그대로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일을 제쳐둔 채, 바람난 뭐 모냥으로 오밤중에 벌써 몇 번이나 담배를 풋기 위해 현관문을 들락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시기’한 기분은 여전하다.

'행인2'의 반란 - 지금 '거시기'한 내 머리속을 맴도는 말이다. 일을 손에 잡지 못하게 하는.

지금은 네이트에 흡수되어 그 존재감조차도 희미해져버린 ‘라이코스’를 국내로 들여오고, 인터넷닷컴의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고 하던 때, 그럴 자금이 있으면 그 자금을 국내 프로그래머를 위해 쓰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그쪽 회사 관계자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그 자금이면 국내서도 그 정도 서비스는 해낼 수 있고,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그 편이 훨씬 더 나은 길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곧장 당시 새롭게 서비스를 시작하는 포털의 대표에게 검색과 언론을 매개로 한 새로운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안했다.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가 언론을 접수(?)했다.

언론(특히 인터넷언론)은 이내 언론 본연의 기능에서 멀어져갔다. 사실 전달과 비판보다는 네이버 제국과 그 제국의 신민들에 영합하는 길이 언론으로 성공하는 지름길이 되었다(역사는 반복된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에 영합하는 길이 곧 일등 언론으로 성장하는 지름길이었다. 역사는 시대의 거울이다. 그리고 학습효과는 무섭게 현실적이다).

네이버는 제국 건설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국을 성공으로 이끈 방식은 기형적이었다. 게다가 네이버는 제국이 갖는 문제 일반을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많이 노정했다. 네이버에 제안서를 넣었다. 제안의 요지는 제국이 아닌 열국의 건설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계가 분명한 제국 건설에 목을 매달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곧 열국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행인2의 반란을 조장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자는 것이었고, 네이버가 기꺼이 그 장(場)이 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검색 시장 개척을 천명하고 나선 첫눈이 정식 서비스를 미루고 있던 시점에 첫눈 관계자와 만나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열린 검색으로 ‘한국의 구글’을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 시장이 아니라 당장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일조차도 난망해보여서였다. 무엇보다 첫눈의 지향점에 위치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수 매니아일 개연성이 크고, 그것은 ‘행인2’로 지칭되는 새로운 주체 세력과 괴리를 낳을 게 뻔한 일이었다.

첫눈 관계자와 나눈 이야기는 네이버에 제안한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방문이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라이코스나 신생 포털(이름은 밝히지 않는다)에 제안한 것이었고, 지난 8년여 동안 이루고자 애써온 일이었다. ‘행인2’가 주인이 되는, 열린 세상을 만드는 데 대한 이야기였다.

네이버의 공룡화 내지는 제국주의적 행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이버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바로 행인2의 반란을 성공시키는 일이다. 첫눈의 열린 검색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준비해온 ‘N로그’의 개념과 결합된다면 네이버와 같은 (그 한계가 예정되어 있는) 제국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열린 방식의 커뮤니티가 가능하다. 대강 이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그 첫눈이 네이버에 인수되어버렸다. 열린 검색을 주창하던 첫눈의 눈사람이 닫힌 검색의 대명사인 네이버의 멋진 모자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네이버, 첫눈 맞다?


“Losers are always in the wrong."

오른쪽 메뉴의 링크 사이트에서 '첫눈'을 내린다.



<덧붙이는 글>

1.
나는 첫눈이 네이버에 인수합병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는 할말이 없다. 그 결정이 잘 된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다. 비록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으로 보이던 질적으로 다른 두 회사가 어떻게 같은 배를 탈 수 있는지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잘못 본 것일 수 있으므로 굳이 탓을 하자면 그건 내 탓이지 첫눈 탓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온전히 동의하기 힘든 것은 장병규 대표가 밝히고 있는 네이버와의 인수합병에 대한 변이다. 장 대표는 느닷없이 "해외 진출은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로 인수합병에 대한 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존을 포함한 소기 성과의 가능성은 뚜렷해졌지만, 해외진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내가 '느닷없이'라고 한 것은 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장 대표가 해외진출에 대한 이같은 고민의 일단을 비치거나 토로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아직 이해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는 첫눈에 보낸 네티즌의 지지와 성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끝내 외면한다.

그는 생뚱맞게 온라인게임을 들먹이고 소프트웨어를 들먹이고 닷컴 서비스를 들먹이다가는 갑자기 "성공이라고 부를만한 경우가 있느냐"고 묻는다. 실리콘밸리가 어쩌고 하더니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고, 남자들은 군대까지 가야한다"면서 "뭐하나 쉬운 것이 있나요?"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 좀 얼척이 없었다. 유저들이 첫눈에 기대한 것은, 그래서 성원을 보냈던 것은 그게 아니지 않는가? 장 대표가 짐짓 애국심 내지는 한갓된 민족주의에 기대어 주장하는 그같은 이유에서 유저들이 첫눈에 관심을 표명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유저들이 도무지 만만하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2.
첫눈 멤버의 "첫눈 포에버"라는 표현을 보다가 문득 유시민이 생각났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시민을 끌어모은 다음, 멀쩡하게 존재하는 공당의 당인까지 들고 다른 당으로 가서는, 당에 남아 있는 시민들에게 '상종을 못할 사람들'이라는 식의 언설을 내뱉던. 그럼에도 그 결과로 지금은 장관까지 되어 영달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