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지자로 여겨지는 어느 블로거가 5.31참패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글을 쓴 다음 민주통신 블로그에 트랙백을 걸었다. "정말 3질 떨어지는 내용이라 제 블로그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서다.

용감한 그 블로거의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블로그의 순기능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놓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블로그다.

블로그는 그러나 아직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블로거 대부분이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만 소통하려 할 뿐,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글 엮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몸 사리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자신의 생각을 정초하는 일이 쉽지않아서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상당한 수고를 요한다. 웬만한 치열함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과 글이 섞이는 경우,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상당한 압박감과 피곤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블로거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글을 섞으며 논쟁하기보다는 차라리 비슷한 생각을 지닌 패거리들 속에서 적당히 안주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비겁하기까지 한 일이지만, 변명은 가능하다.

모든 블로거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글쓰기에 능한 것은 아니며, 설사 글쓰기에 능하다 할지라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기도 버거운 판에 블로그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란 없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졌다.

지저분한 윗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트랙백을 걸어준 위 블로거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전하는 블로그 글에 트랙백을 거는 일은 실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위 블로거의 행위가 충분히 용감했다고 본다.

하지만 글의 논점에 이르면 이야기는 다르다. 글쓴이의 주장에 동의하기가 쉽지않다. 이 블로거는 열린우리당의 5.31 선거 참패가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깨질 때는 어중간한 것 보다는 참혹할 정도로 깨지는 편이 낫지요. 바닥을 쳤을 때 다시 박차고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대선과 총선을 앞 두고, 모두가 다시 원점에서 생각할 기회가 생긴 셈입니다. 노대통령도 열린우리당도 그리고 국민들도."


원론적으로는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가 필요하다. '다시 박차고 오를 수 있는 힘'이나 '원점에서 다시 생각할 기회'는 사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정직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고는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국민 일반이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절망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국민 일반의 생각은 사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그들에게 부재하다는 것이고, 그들로부터 어떤 반성의 기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위의 글이 설득력과는 거리가 먼 자위적 성격의 글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아연하게 하고, 그래서 이 글까지를 쓰게 만든 것은 글쓴이의 마지막 말이다.
 

"여하튼 이번 결과로 신난 건 위기감에 결집한 골통 보수 진영과 언론들인 것 같군요.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도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봐야 할텐데요."


이 글은 반성적 인식의 결여가 열린우리당이나 노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맹목적 지지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금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의 위기는 이같은 부박한 인식의 지지자들이 초래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성은 본질적으로 나로부터 비롯된다.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건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몫이지 내몫이 아니다. 게다가 반성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상대의 반성까지 대신해줘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반성해야 하는 지점에서 상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넌센스다.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들을 맹목적으로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가 부족하고 자신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극히 단순무쌍한 행동양식이며, 글쓴이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전형적인 "꼴통" 짓인 셈이다.

생각해보라. 스스로가 '꼴통' 짓을 하면서 상대를 향해 '꼴통'이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나를 세우는 힘은 증오나 배척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감과 비전의 제시를 통해서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