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한 편 봤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재밌게 봤다.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을 갖춘 영화였다. 이것저것 설명하며 관객을 간섭하지 않는, 영화가 잃어버린 바로 그 미덕.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영화가 소설이나 시의 영역을 대신하면서 잃어버린 게 있다면 관객의 주체적 상상력(말이 되나?)일 것이다. 최근에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 이건 마치 관객의 감각을 마비시키지 못해 안달인 모습이다. 온갖 조잡한 기교를 동원하다 못해 이젠 그것을 굳이 설명까지 해가면서, 그것도 아주 유치 찬란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교를 눈치 채는 게 마치 대단한 교양이라도 되는 듯이 믿게 만들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죽여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최근의 다른 영화와는 사뭇 다른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도 관객에게 일일이 설명하려드는 구차함이나 '키치'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영화속 현실은 구차했을지라도 최소한 영화는 구차하지 않았다. <통신보안>

여담이지만(위의 글은 뭐 여담 아닌 글이나 되는 듯이..^^) 내가 작가였다면 주인공을 하인으로 설정하진 않았을 것같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아버린, 그러나 결코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숨기지도 않고 당당해 하는 그런 친구의 조숙함(이 아니라 실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 살아날 수 있는 캐릭터로 그렸을 것이다. 와이낫?.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를 더한다면.. 우리나라 여자들은 참 답답하다. 중학생이면 여자로서 이미 충분히 성숙해도 좋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미성숙한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자신의 그런 미성숙이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마치 순결한 것인 양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결이 아니라 오히려 '키치'하거나 유아틱한(젖비린내 나는) 것에 가깝다.

진실로 순결한 영혼이란 오히려 성숙한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