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저 평화하게 하느적거리던 군대시절이었다. <꿈꾸는 식물>이라는 소설이었다. 'xxx' 정성들여  읽고나서 내뱉은 소감이 그것이었다. 하나 더 봤다. <칼>이든가 하는 제목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이후 나는 그가 쓴 책이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때 함께 근무하던 7명의 군발이 중에는 이외수와 절친한 육군 상병 하나가 있었다. 춘천 교대 후배인 그는 당시 내 직속고참이었다(그에게 야구 방망이로 몇 대 맞은 기억이 새롭다. 게기다가 잘못 맞은 탓에 - 사실 나는 내가 잘못 했을 때는 찍소리 안 하고 잘 맞아준다. 그 빈도가 넘 잦아서 탈이긴 했지만 -  제대를 하고서도 한참 동안 힘들었다. 날궂이를 했다는 뜻이다). 별명은 토미(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였고,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칭구였다. [각주:1]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어쩌다 들르는 서점에서 <벽오금학도>에 눈길이 미치면, 그 겉표지를 보게되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나의 턱없던 도전과 좌절의 기억이다.

<벽오금학도>를 처음 보게 된 것은, 그래도 시작한 일인데 한 권의 책이라도 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함께 일하던 이들의 얼굴이 있어, 그때는 이미 의욕만으로 시작했던 출판사 일(인문학총서기획)이 더이상 꾸려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뚝딱하게 책 한 권을 만들어 그 첫 배본을 나갔던 교보문고 앞에서였다.

거기에선 <벽오금학도>의 출간을 알리는 전단이 꽃가루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벽오금학도'(그림)를 지겹도록 보게되었고, 그 얼마 후에 우리는 문을 닫았다.  소설 <벽오금학도>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러고도 18개월여가 지난 어젯밤, <벽오금학도>를 읽었다. [각주:2]

어느날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전철을 기다리거나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중에 문득, '선생님, 혹시 도道에 관심 있으십니까'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의 황당함이란 참 당혹스럽다 할 수 있는데, <벽오금학도>를 읽으면서 가진 느낌이 바로 그런 황당함이었다.

이 소설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소설은 대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소설인가. 진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구도소설인가, 아니면  어른을 위한 동화인가, 아니면 사회의 위악적인 요소들을 고발하고 질타하는 세태소설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대중을 깨우치기 위한 계몽소설인가.

구도소설이라기엔 너무 안이하다.
이 소설에는 구도소설에서 요구되는(?) 어떤 치열함도 없다.

동화라기엔 너무 되바라져 있다.
동화의 한 미덕이랄 수 있는 해맑은 순수함이나 희망을 이 소설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에도 거기에 해맑은 미소로 답하기가 쉽지않다.

왜일까.
 

- 아이가 오줌이 마려워서 눈을 뜨게 된 것은 새벽녘이었다.
- 불현듯 바깥에 눈이 내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전신을 휩싸고 있었다.  
- 싸늘한 냉기 한 모금이 폐부 깊숙이 스며 들어와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감각들을 소스라치게 만들고 있었다.
-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걷히고 있었다.
- 시간이 침잠하고 있었다. 침잠하는 시간 속으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소설의 어느 곳에서고 만나게 되는, 유치하다는 것 말고는 다른 표현을 찾기 힘든, 이런 류의 미숙한 언어구사가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을 동화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각주:3]

세태소설이라기엔 그 예봉이 너무 무디고 느리다.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현실의 문제들은 우리 모두가 이미 공감하여 그 해결책을 찾고 있는 문제들이다. 진부한  얘기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방식으로 재연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다시 또 지켜봐야 한다는 건 역겨운 지겨운 일이다.

계몽소설이라기엔 너무 배타적이다.
대중에 대한  어떤 애정도 이 소설은 담고 있지 못하다. 너와 나, 내 편 네 편으로 금 그어놓고 편가르기 놀음을 하는 양이 딱 그러하다. 우리 편은 선이고 다른 편은 악이다. 아, 이 우라질넘의 편가르기라니.   

다른 한편 이 소설은 그 형식과 내용에서도 몇가지 약점을 안고 있다.
 

이외수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미숙한 문장력이다.

이 소설의 작문 수준은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소설엔, 그 중요성을 한참 떠들어대던, 대학입시 문장강화용  훈련 텍스트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어색한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작가의 전략적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작가의  미숙함 내지는 불성실한 태도 이상은 안 보인다.

작가의 전략이 소설에서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의 소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요건까지를 희생시켜도  좋을만큼은 아니다. 더구나 작가의 숨겨진 의도 따위가 도무지 없는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이 소설에 뭐 그리 대단한 전략까지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같은 생각에는 나의 미처  덜 뜨인 '심안'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무튼 그렇다.

지나치게 잦게 사용된 비유법은 덜떨어진 문학 소녀의  유치 찬란한 글을 연상시키고, 요령부득인 어미 활용에다 막무가내인 시제 처리는 작가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소설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피동과  사동의 어색한 사용은, 교열과정에서 그 오용이 충분히 인지될 수 있는 것이고, 게다가 이 소설을 내고 있는 출판사가 다름아닌 출판계의 명문이랄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아쉬움을 차라리 출판사에 돌리고 싶을 정도다.
 

- 시간이 침잠하고 있다.
- 침잠하는 시간 저쪽에서 희뿌연 새벽 미명이 몰려와 문창호지를 적시고 있다.
- 자물쇠를 풀자 나지막한 비명 소리를 발하며 대문이 열렸다.
- 불이 꺼진 한옥 한 채가 어둠 속에 웅크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이 소설의 두번째 약점은 그 넌센스적 내용들이다.

이 소설은 도무지 넌센스로 일관하고 있다. 하도 알아듣기 힘든 헛소리를 하는 터라, 그렇다면 이를 정신병적 관점에서 함 봐봐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를테면, 정신병원의 기원을 다루면서 미셀 푸코는 '정신병자도 실은 그의 논리 체계 속에서는 지극히 정합적이고 일관성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걸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하는 건가 싶어서디

그러나 소설은 여전히 일상인의 기본적인 의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접수해야 할까? 현자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몽상가로 봐야 할 것인가.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있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세계이다. 작가는 현실을 금 안의 세계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금은 (이하 생략)

일상인의 세계는 이를테면 이런 세계다. "사람들은 대개 활자화된 내용이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맹점들을 간직하고  있다"거나, 이들의 "자존심을 적당히 이용할 경우 더욱 구매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거나 그래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용하고 이용 당하는 세계다(이하 생략).  

세번째는 도피적인 결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짜증이 나는 것들이 있다. 작가가 끝내 그 의도를 숨긴 채 독자로 하여금 그 의도를 읽어달라고 말하는 경우다. 쥐뿔 그런 게 안 보이는 모호한 글(아무리 봐도 작가 자신조차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헷소리)을 던져놓고는 독자보고 그걸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건 가이소리다.

포커 판에서 이런 경우 많다. 일부러 상대가 내 패를 읽어주게 유도하며 승부수를 띄우는 경우다. 이같은 승부수는 잘만 하면 상대에게 카운터 블로를 먹여 일거에 판을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 또한 크다. 히든 카드가 뜻대로 먹히지 않는 경우 이제까지의 전략적인 희생보다 더 큰 카운터 블로를 내가 얻어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대개 이도저도 아니다싶을 때 마지막에 던진다.

모호한 방식으로 글을 써두고 거기서 대단한 어떤 뭔가를 독자더러 생각해 읽으라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이외수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승부수에서 성공적이었다. 번번이 독자가 먼저 나가 떨어진 덕분이다.

이외수는 과연 독자가 넘볼 수 없는 좋은 패를 가졌던 것일까?


이외수의 하악하악

힘든 일이겠지 하악하악 - 이외수와 정신병자들


아, 썰을 풀다보니 소설의 줄거리가 빠졌다. 한 줄로 요약하자. 이 소설의 줄거리는 그러니까 '편재' 불능의 시공 속에서 '편재' 가능한 세계로의 이행을  꿈꾸던 주인공이 마침내 때(?)가 되어 저 선계로 가게되었더라는 이야기다. (이보다 더 자세한 줄거리를 알고싶은 분은 여기서 보시길.)

이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는 '마음공부'다.

작가는 "세상만물 중에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스승 아닌 것이 없으며", "아주 작은 먼지 한 점조차도 우주의 절대적인 요소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허나 그런 사실을 실감하려면 우선 마음으로써 모든 사물들을 지극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그리고 되도록이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낮추어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음을 닫아 걸고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좋은 얘기다. 참으로 공자같은 말씀이시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마음을 닫아 걸고 현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가가 마음으로써 모든 사람을 지극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란 적어도 이 소설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금 하나 그어놓고 그들과의 진지한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작가 쪽이다. 어지러운 현실만을 나열하여 비난할 뿐, 그 현실을 수용하려는 어떤 지극한 태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편재'를 시도하려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도 작가는 소설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도피만을 꿈꾼다. 그러므로 작가의  이런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은 따로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대개 활자화된 내용이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맹점들을 간직하고  있다"거나, 이들의 "자존심을 적당히 이용할 경우 더욱 구매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거나 그래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대목들이다. 그래서 말인데,

어게인,

"선생님, 혹시 도道에 관심 있으십니까."

서점에서 책을 고르거나, 지하철에서 전철을 기다리다 종종 듣게 되는 소리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그런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은 대개 활자화된 내용이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맹점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과 독자의 "자존심을 적당히 이용할 경우 더욱 구매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작가의 "각본대로" 독자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기를 바라고 쓰인 책은 행여 아닌 것인가?


모를 일이다. [각주:4]



 

<덧붙이는글> 블로고스피어에 하민혁이 안티 팬이 수만이라는 말을 듣고(실은 그 말 듣기 이전에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는 참입니다) 자중 모드에 들어갑니다. 원래 새가슴인 터라 살짝 겁도 나고 해서 앞으로는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듣보기 좋은 글만 올리도록 할 생각입니다. -_-
 http://www.youtube.com/watch?v=AZRd8av4Leo

  1. 그도 곧 소설가가 되었는데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그는 이미 시인이기도 했다 - 재미는 없는(죄송.. ?) 그의 소설을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챙겨 읽는 편이다(이 글 쓰면서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전문 분야에서는 많이 유명한 분이신 듯하다. 필명으로만 활동한 탓에 몰랐다. -_-). [본문으로]
  2. 이 글은 1994년에 쓰인 글입니다. [본문으로]
  3. 이 글의 어디가 뭐이 어쨌다고 난리냐? 이 글이 통신에 올려졌을 때, 한 두 사람에게서 이런 질책성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위의 글은 이 글의 주체인 어린아이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휘들로 다.만. 치.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첫 줄에 나오는 오줌이 마렵다는 표현을 빼고는, 불현듯, 예감이 전신을 휩싸고, 냉기, 폐부, 감각들을 소스라치게, 침잠하는 시간 등.. 도대체 어느 것 하나 아이의 시선이라고는 볼 수 없는, 다만 작가의 '덜 떨어진' 의식을 보여주는 그런 표현들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감각적인 표현들을 줏어다 떼어붙인 여고생의 시구같은 이런 글들이란, 말 그대로 여고생의 시구에서라면 몰라도 소위 작가라는 타이틀을 내건 사람의 글에서 취할 바는 아닐 터입니다. [본문으로]
  4. 젠장, 이건 뭐.. 이외수 말대로 정신병원에나 함 가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_-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