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의 서비스가 시장의 큰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상당 기간의 기획과 시장조사를 통해 조직적/계획적으로 진입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구성원의 패기 열정 등이 기업을 이끄는 주 동인이지만, 후자는 조직과 자금이 주 동인이 된다. 대부분의 소규모 벤처 기업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일정 정도의 규모를 가진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은 대개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내가 아는 올블로그(이하는 모두 내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의 올블로그이다)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까운 기업이다. 조직과 자본에 의지하고 있는 기업이 아니라 구성원의 패기와 열정이 자산인 기업이라는 얘기다.

어제 오늘 올블로그(이하 올블)가 '채용 번복' 사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채용 번복' 과정에서 드러난 몇 가지 요인(예컨대, 가족주의 발언, 지역색 발언, 골빈해커님의 반박글)에 블로고스피어에서 올블이 차지하는 특수한 역할 등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더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 주목하면 이번 사태가 문제되고 있는 지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올블은 아직 체계화/조직화된 기업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업성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만들어가는 중인, 인큐베이팅 단계의 벤처 회사다. 그렇다면 이같은 단계에 있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어떤 사람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함께' 회사를 만들어갈 사람이다. 채용의 기준 또한 거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되고 있는 올블의 '가족' 발언이란 기껏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히 페이를 받는 직원이기보다는, 꿈과 비전을 공유하며 함께 회사를 만들어갈 사람이다'는 얘기의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의 '가족경영'까지 끌어들여 비약하거나 확대 해석할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아직 채 만들어지지 않는 단계의 회사에, 그것도 자금과 조직이 아니라 패기와 열정이 자산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회사에 한 나라의 표준적인 기업, 그것도 내노라 하는 대기업의 사례를 대입하여 왜 '가족주의'냐고 묻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합리하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기업이라고 해서 다 같은 기업이 아님에도 이를 무시한 채 단순히 평면 비교하므로써,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가 하면 오도하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경에 처하게 된 데는 골빈해커님의 반박 포스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몇몇 블로거가 지적하고 있듯이, 골빈해커님의 저 발언은 시장 진입 단계의 회사에서 핵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책임자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음직한 토로였다. 일부 불필요한 감정적 언사를 배제한다면, 채용번복의 취지가 오도되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만 보는 것도 책임 있는 행동은 아니겠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처음 희주님이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알렸을 때 올블이 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블로그가 갖는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법한 올블이 이같은 패착을 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아이러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올블의 이같은 안이함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바로 자만 혹은 오만이 빚은 결과라는 점에서다. 자만은 자주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자만은 흔히 미성숙이 갖는 또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올블이 아직은 인큐베이팅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앞쪽에 있는 세 줄이다. 올블은 지금 진통 중이다. 알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다. 이번 '채용 번복'이라는 진통을 통해 올블이 더 강건한 벤처로 거듭나주기를 희망해본다.




<덧붙이는글>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는 확실히 '희주님의 황당함 혹은 억울함'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실 분도 있겠다. 맞다. 내가 희주님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당혹스럽고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희주님의 글이나 다른 블로거의 글을 통해 이미 충분할 정도로 개진되었고, 희주님 자신도 더 이상의 재론을 원치 않고 있기에 생략했다. 이 글은 이번 올블의 '채용 번복' 사태가 그 본질을 벗어나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있으며, 그 결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오도되고 있다는 측면에만 순전히 그 포커스를 두고 있다.

<덧붙이는글>두 가지만 덧붙이자. 먼저 위의 글은 올블의 '채용 번복' 사태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하지 말자는 어떤 주장도 담고 있지 않다. 그럴 의도 또한 전혀 없다. 오히려 논란이 단발성으로 끝나기보다는 더 치열하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가 짚고자 했던 부분은 논점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그 이상을 넘지 않는다.
또 하나, 내가 쓰는 모든 글은 큰 방향에서 특별히 어느 한쪽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내가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건 실제로 행동하는 쪽이다. 뭔가를 주장하거나 비판하는 쪽보다는, 비록 그 결과가 다소 시원치않다 할지라도 실제로 뭔가를 도모하고 실천하는 쪽에, 그것도 선도하는 사람/단체에 나는 확실히 우호적이다.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