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도림테크노마트에 나갔다가 영화 <추격자>를 간판만 보고 그냥 돌아왔다. 볼 일을 보고도 시간이 남아서 영화관 매표소 앞까지 갔으나,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일상이 계속되고 있는 터에, 영화를 보면서까지 애써 불편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늘 영화 <미스트>를 봤다.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 진행하고 있는 일도 지지부진인 터여서 가볍게 머리나 식히자고 택해 본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몹시 지쳐 있다. ㅡㅡ;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체.. 어쩌자고 이런 영화를 봤을까? 기분이 엉망이다. 언젠가, 하필 어버이날에 영화 <피와 뼈>를 보고나서 몇날 며칠 동안을 불편해 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영화 <미스트>는 한 인간의 판단이, 한 상황 속의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을 허탈하게 지치게 혹은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감속에서 영화속 주인공과 영화밖 관객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그러나 옳다고 믿었던 바가 무너지는 순간에 엄습하는 것은.. 불편함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며칠 전 그동안 실종된 걸로 알려져 있던 아이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오늘은 출근하는 차 안에서 한국인 입양아들이 양부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은 박정희 생가를 지키던 노인이 발가벗긴 채 괴한에게 맞아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다. 그것도 아직 어리디 어린 아이를 톱으로 썰어 토막내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죽이는 세상이다. 여든 노인네를 발가벗겨 묶은 다음 때려죽이는 세상이다.

어느 것 하나 정상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영화 <미스트>의 상황과 뭐가 다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뉴스를 좀더 자세히 보려고 네이버 뉴스에 들렀다가 저 사진을 봤다. 6.25 전쟁 중에 죽은 어느 병사의 수통이 DNA 검사를 통해 주인을 찾았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래.. 그런 전쟁이 있었지.. 영화 <미스트>와도 같은. 아니, <미스트>는 비교할 바도 못 되는, 수백 만의 사람이 주검이 되어야 했던, 영화가 아닌 현실태인.

어느 블로그에 들렀더니, 며칠 전 내가 쓴 진중권에 대한 글들을 두고 '실망스러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진중권 같은 이런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이 이 꼬라진데.. 말이다"면서. 그리고는 진중권의 오늘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고 있다.

진중권은 저 기사(진중권 “악역이 필요한 때 아닌가 李정권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 )에서 스스로를 악역으로 자처한다. 물론 그 악역은 당연히 좋은 의미의 악역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밀림, 정글로 만들려는 악의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악역.


- 이번 정권에서 발언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정권 끝나면 다시 공부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정권이 나를 부르는 거죠. 저 공부해야 해요. 미디어 미학을 정리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업량이 많아요. 그런데 정권이 저러고 있으니 제가 일을 못합니다. 이런 연구 성과들이 다 한국의 경쟁력인데, 정권이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요.”

-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하시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지금 사회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사회를 밀림, 정글로 만들려고 하잖아요. 일제고사를 봐서 성적 다 보여주고.”

- 그렇게 걱정될 정도 입니까.
“5년 후에 의료보험증 들고 갈 수 있는 병원이 몇 개나 있을까 이게 제일 걱정됩니다. 의료 민영화다 뭐다 해서, 저 놈들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에요. 막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절망한 사람들은 사회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건 곧바로 범죄로 나갑니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사형제로 다스리겠다고 하니, 이 사회가 뭐가 될는지.”

 
언제 봐도 시원시원한 진중권의 말빨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진중권의 세치 혀에 맡겨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암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있는 사회"를 향해 그가 자임하는 저 역할은 2,500년 전의 아테네 사람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살찐 말을 깨우는 등에'이기를 마다 하지 않은 그 역할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진중권은 그걸 알고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조국 아테네가 바로 설 수 있기를 희망했다. 저 '등에'의 역할도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의 바램과는 달리 스파르타에 패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역사는 아테네 멸망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불안정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세 치 혀'와 '논리'로만 세상을 보려 한 소피스트가 있었고. <통신보안>



<덧붙이는글> 이명박 정권을 향한 비판/비난의 호들갑스러움이 도를 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잘 하는 것 없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겨우 한 달이다. 그것도 역대 후보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 받는 이가 수장으로 들앉은 정권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한 달을 채운 그 형편없는 정권에 대체 무엇을 얼마나 더 바랬길래 이 야단들이라는 말인가?

지금 이 사회가 마치 절단이라도 난 듯 "세상이 이 꼬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위험하다"고 야단인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비판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몇 개월 지켜본다고 대한민국 어디 가는 것 아니다. 지금 사회가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주디를 놀리는 이들이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렇게 형편 무인지경인 이들에게 국민이 왜 정권을 주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최소한의 겸손함을 보이는 일이다. 비판은 그때라야 힘이 실린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말해 국민 모두가 미쳤다 말하고싶다면, 이대로 두면 사회가 무너진다 믿는다면, 그때는 한갓 주디 따위로 나불대며 비겁/비굴/비열하게 날로 빌어먹으려 할 게 아니라 당당히 목숨을 걸 일이다. 혁명을 하라는 말이다. 와이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