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디워(D-WAR)를 봤다.

2.
영화를 보기 전, 디워를 트랜스포머나 다이하드4와 비교하면서 디워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는 말했다. 살짝 무시하는 웃음까지 섞어가며

"아니, 비교를 어찌 그렇게 하느냐"고, 그건 '범주착오'라고. 형식논리에 빠져 원천적으로 출발점과 층위를 달리 하는 두 대상을 비교하는 매우 가당찮은 짓"이라고, "그러지 마시라"고.

3.
영화에 대한 혹은 영화를 보는 내 관점은 아주 단순하다. '재밌는가, 재미 없는가?'
- 이것이 거의 전부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영화를 본 이들에게 감히 '그러지 마시라'고 한마디 할 수 있었던 근거도 여기에 있다. "재미는 있다. 그러니 그 부분만은 절대 걱정말고 가서 보라"는 다수의 감상평은 나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특히 디워에 대한 몇몇 평론가의 지나치다싶을 정도의 혹평은 '그러면 잘난 지들이 한번 만들어보지..' 하는 심정까지 더해지면서 디워 아니 더 정확히는 심형래에 대한 옹호를 더 공고히 하였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영화를 탄생시킨 심형래의 의지가 더 빛나보였다.

여기에는 지난 번 영화 괴물을 개봉했을 때의 기억도 한몫을 했다. 괴물을 두고 재미없다는 둥 뭐가 문제라는 둥..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도대체 그같은 평가들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괴물은 이제껏 내가 봐온 한국 영화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암튼,

4.
어제 드뎌 영화 디워(D-WAR)를 봤다. 그리고..




5.
할말을 잃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6.
두 가지가 크게 혼란스러웠다. 먼저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이냐는 부분이었다. 본격 SF 영화라고 하지만, 내게는 이게 내가 아는 SF 영화랑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말해, SF 영화에서 기대함직한 재미를 나는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7.
기껏 내가 분류할 수 있는 장르는 블랙 코메디였다. 막강한 자금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헐리우드식 영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혹은 그 토양이 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웃기지 말라며 풍자하고 조롱하는. 나아가 그같은 영화에 광분하는 관객들에게 '옛다! 엿 먹어라'며 한방 먹이는.

그러면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듯싶었다. 왜 그 많은 돈이 쓰여야 했는지 모를 수많은 장면들이 그헣다면 이해될 수 있었고, 여느 중소기업의 탕비실 수준만도 못한 FBI(혹은 미국방부) 비밀?사무실의 모습이 그렇다면 이해될 수 있었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기를 그렇게 훌륭히 어색하게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확실히 그것들은 모두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불편한 모습을 띠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 의도에 충실한 디워는 대단히 성공적인 부조리극이었다. 그렇게 불러 손색이 없는 한편의 멋진 블랙코메디였다.

나는 여기서 기꺼이 디워 만쉐이~ 심형래 만쉐이~ 를 부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8.
그러나 이같은 내 결론은 심 감독에 의해 금세 무너지고 만다.
두번째 혼란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9.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드러난 심 감독의 생각은 내가 내린 결론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일관되게 디워가 헐리우드판 본격 SF 액션 영화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심 감독의 이같은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매우 심각하고 단호하게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선언문인 셈이다.



10.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세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이거 진짜 영구 아니냐'며 걍~ 허탈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B급 괴수영화'라는 딱지를 붙여 논외로 쳐버리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래도 뭔가 의미를 찾아보는 일이다.

11.
첫번째 길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처참하다'는 한마디로 충분하다. 도대체 저런 영화를 만들고도 당당할 수 있는 그 멘탈리티에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란 불가능하겠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말 그대로 'B급 괴수영화'라는 딱지 붙이기고, 딱 그걸로 족하다.

12.
한편 뭔가 애써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영화 내적으로 기술적 분야의 성과와 영화 외적으로 한 인간의 열정과 의지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다.

디워에 대한 얘기에서 빠지지 않는 게 CG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디워가 아무리 CG에 힙입어 탄생한 영화라고 해도, CG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따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더구나 CG 기술 자체가 이미 보편화-평준화되고 있는(이게 좀 뚜드러맞을 수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암튼) 마당에 CG 기술력만으로 영화를 성공적이라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6년여에 걸친 한 인간의 집념과 열정에 대한 평가만이 남는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면 솔직히 심 감독의 그 뚝심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싶어진다. 나 또한 그의 열정과 의지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13.
하지만 찬사를 보내되, 이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불굴의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저 자기확신과 그것이 갖는 양면적 의미에 대해서다.

14.
'확신범'은 자기확신 곧 신념 하나로 사상의 전향이나 종교적 개종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이다. 이같은 신념이 개인 일반에 실천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경우가 집념이다. 집념에는 힘이 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 힘은 자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집념의 힘이 그러나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때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독재나 전쟁이 그것이다.

집념의 힘은 강하지만, 그 힘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의 가치를 가진다. 적절한 외적 견제와 자기 조절에 충실한 힘은 긍정적으로 발휘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독재나 전쟁은 집념이 외적 견제가 결여된 자기 일반화의 과정을 거쳐 극단화된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15.
나는 디워를 심 감독의 집념이 낳은 부정적인 결과물이라 말하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심 감독의 발언 곳곳에서 이같은 부정적인 징후가 감지된다는 사실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디워를 '대한민국 SF의 새로운 신화' 자리에 두고자 하는 심 감독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16.
에둘러 말하기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 완곡어법으로 이야기를 풀려다보니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인가 싶은, 희닥한 말들만 줄줄이 늘어놓고 있다. -_-

17.
정리하자. 영화 디워를 보고 난 이후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18.
디워(D-WAR)는 이상한 영화다. 그러나 심형래는 위대하다!
그 전쟁(The WAR), 디워(D-WAR)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심형래다.


19.
SF적 요소라고는 CG 밖에 없는 성부른, 장르조차 불분명한 국적 불명의 이상한(?)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한국 영화사상 최대라는 700억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그래서 누구도 가능하지 않으리라 여기던 그 영화를 결국 만들어내고 그것을 세계의 영화관에 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다.

그 영화를 들고나와 '대한민국 SF의 새로운 신화'를 말할 수 있고, 나아가 세계시장 제패를 호언하고 기꺼이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들다.

한국 영화판이 자신을 '왕따' 시켰노라 말하며 눈물 짓는가 하면, 엔딩 크레딧에 아리랑과 자신의 일대기를 집어넣고 기꺼이 감격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괴물을 만든 봉준호가 그랬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상상이 되는가? -_-)


심형래는 확실히 용감했고, 또한 위대했다. 만쉐이~ 




사족 1. 신지식인 심형래

심형래의 이름 앞에는 흔히 '신지식인'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이 라벨이 주는 이미지에 나는 자주 거부감이 일곤 한다. 여기에는 저 '신(新)'이라는 표현의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과 거기서 오는 거부감도 없지 않겠지만, 보다는 그렇게 불리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식 일반 혹은 멘탈리티 일반의 부박함이 주는 거부감 또한 적지않다.  

디워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거부감이 있다면 그것은 후자에서 오는 거부감이다. 나는 디워의 한계가 정확히 신지식인의 한계와 맛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족2. 부라퀴가 불쌍해..

그러고 보니,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은 듯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안쓰럽게 했던 것은 500년을 이어져온 주인공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도 선한 이무기의 승천 투쟁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라퀴'였다.

영화는 그가 왜 나쁜가에 대한 어떤 이해도 구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천상에 의해 선택되지 않았다는 게 그가 '나쁜 이무기'가 되어 꽤~액~ 거려야 하는 이유의 전부다. 내가 부라퀴였더라도 그런 게 천상의 이유고 선택이라면 분연히 들고 일어나 저항했을 법하다.




<덧붙이는글> 이상하다. 그림 삽입이 안 되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