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바보들인 줄 알았더니 니네 미친 거 아니냐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저들은 미친 게 아니라 바보들이었던 게 맞습니다 미친 이는 적어도 허튼 음모론에 휘둘리거나 이용은 당하지 않겠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미네르바 조작 음모론이 나왔습니다 미네르바 체포와 함께 불거져 나온 여러 버전의 음모론이 '검찰의 미네르바는 아고라의 미네르바가 아니다!!!'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단순히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명료한 확신'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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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도아님 주장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1. 미네르바는 경제지표를 통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통찰력이 넘쳐났다 그러나 체포된 미네르바는 전문대 졸업의 30대 백수였다 - 그 간극이 너무 크다
2. 미네르바를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극찬했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도 “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글”이라며 “30세 무직인 누리꾼이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 전 청와대 경제수석조차 아니라고 한다
3. 미네르바를 알고 있다는 readme 는 "나는 알고 있다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을... "이라는 글을 통해 체포된 미네르바가 고문이나 회유를 통해 거짓 자백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 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4. 미네르바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작성했는 글에는 미네르바 특유의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다 - 글은 마음의 거울이다 (그 거울에 미네르바 안 보인다
5. 상식에 의하건대 미네르바라면 위 4번과 같은 글을 쓰라는 검찰의 요구에 응했을 리가 없다


도아님은 말합니다 이건 '상식'이라고 "상식을 이용하면 검찰의 미네르바는 아고라의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아주 단순하며 명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상식까지를 동원하여 펼치고 있는 도아님의 이 주장은 너무 나이브합니다 함량미달이라고나 할까요 음모론으로 봐주기에는 그 주장이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함 보겠습니다

먼저 미네르바가 경제지표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통찰력이 넘쳐났다는 부분입니다 두 가지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인데요 첫째는 미네르바의 글이 과연 그렇게 통찰력이 뛰어난 글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른바 경제예측을 하는 글들이란 모두 기본적인 틀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 포맷이 있고 거기에 상황에 따른 변화 즉 정치사회적 이슈나 경제동향 그리고 경제지표 등을 넣고 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날씨예보 하는 것이나 그 형식면에서 얼추 비슷합니다 맘 먹고 달려들면 누구라도 엇비슷한 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내용인 거니까요 포맷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거기에 시의적절한 데이터가 담겨 있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이 부분도 아주 약간만 노력을 더한다면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자료는 이미 차고도 넘칠 정도로 널려 있으니까요 정보의 보고인 인터넷을 이용한다면 구하지 못할 자료는 없습니다


기본적인 작문력과 상당한 경제지식 그리고 빼어난 정보 검색 능력을 갖춘 백수


한마디로 기본 포맷을 익힌 어떤 이가 사이비 경제 분석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내놓은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뜻입니다 맘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해당 분야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글빨이 있는 백수라면 더욱이요 그런 점에서 이번에 검찰에서 흘린 몇 가지 정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본적인 작문력과 상당한 경제지식 그리고 빼어난 정보 검색 능력을 갖춘 30대 백수' -  딱 들어맞는 케이스입니다

남는 것은 미네르바의 글에 '넘쳐났다'고 평가되는 '통찰력'일 텐데요 그러나 이 부분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수도 없이 많은 국내외 경제연구소의 자료들은 간단한 메일링 가입 하나로도 원하는만큼 받아볼 수 있고 또한 이곳에서 시시각각 죽기살기로 내놓는 것이 바로 그 분석이고 예측입니다 최소한의 짜깁기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이 자료들을 적절히 배열하여 새로운 분석과 예측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지요(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실제로 이런 글들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그 숱한 연구소들은 왜 미네르바같이 그렇게 멋진 예측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이건 좀 복잡하게 따져들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책임성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개인이야 주어진 자료에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지만, 그래서 맘껏 부풀리거나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과 그 책임성까지를 고려해야 하는 연구소의 경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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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요 그 사이에  Laputian 님이 한 가지 의미있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하려던 얘기와도 관련이 있기에 Laputian 이 남겨주신 댓글을 옮기면서 다음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Laputian 2009/01/10 20:51  현재 하민혁 님께서 주장하시는 바로는 미네르바가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고, 구할 길도 없다는 금융권 고위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도 한계는 있고, 짜깁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Laputian 님이 댓글로 남겨주신 내용입니다 미네르바는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도 않고, 구할 길도 없다는 금융권 고위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데 제가 위에서 말한 걸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지적은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태동의 주장과 직접적으로 맛닿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태동은 미네르바를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읽은 미네르바의 글은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글”이라며 “30세 무직인 누리꾼이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도아님이 '검찰의 미네르바는 아고라의 미네르바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김태동의 스승 미네르바와 신동아의 유령 미네르바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문이 타당하게 제기되기 위해서는 먼저 저 '고급정보'에 대한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고급정보의 실체 곧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태동의 주장이나 Laputian님의 얘기 어디에도 이를 확인해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각주:1]

때문에 적어도 현 상태에서 김태동의 '미네르바 극찬'을 근거로 음모론을 말하는 것은 권위에 의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겠다고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미네르바 본인(인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음모론의 핵심이기는 합니다만)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라고 직접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덧붙여 이번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신동아의 '미네르바 기고문'이 아주 상종가를 치고 있는데요 강만수와 정부 경제부처 외에 이번 사태로 똥물을 뒤집어쓴 이가 있다면 그건 아마 김태동과 신동아가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이에 대한 애기는 조만간 밝히겠다는 신동아의 해명을 듣고나서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아는 미네르바 K" 와 "나는 알고 있다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을.." 사이  


다음은 내가 도아님의 글을 보면서 제일 황당해 했던(그러나 다른 한편 제일 재미있기도 했던) 부분인데요 바로 "나는 알고 있다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을... "이라는 글을 인용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도아님은 여기서 미네르바의 지인인 readme 조차도 "체포된 미네르바가 고문이나 회유를 통해 거짓 자백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면서 검찰이 엉뚱한 인물 'P'를 날조했다는 readme의 주장에 동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선언문이 정말 가관입니다

나는 절망한다 고로 나는 투쟁한다.
온 세상이 내 눈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로 시작하는 이 글은 말 그대로 선언문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저는 읽다가 그냥 중간에서 접었습니다 자기 말대로 뭔가에 된통 세뇌를 당했거나 아니면 그냥 살짝 맛이 좀 가신 분 같아서입니다) 제2의 미네르바 출현에 대한 얘기가 종종 들리는데 누군가 제2의 미네르바가 되기 위해 아주 작정을 하고 덤빈다면 이 분처럼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4번과 5번 항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도아님이 말하는 상식이 저랑은 현저히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도아님의 그 상식을 일반화하는 데는 좀더 신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덧붙이는글> 도아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이 분이 왜 저렇게 투사로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도아님은 PC 부문 TIP 분야에서 가히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분이시고 또 유관 분야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쥐박이'를 찾으시더니 흡사 '쥐박이' 못 잡아먹은 귀신이라도 붙은 양으로 이상한 광기(?)까지 보이고 계시다 왜 그럴까?

<덧붙이는글> 지금 보니 한겨레에서도 비슷한 기사를 띄웠군요 (사이버 미네르바와 검찰의 미네르바 사이) 이에 대해 몇 마디 더할 게 있지만 우선은 참고 삼아 링크만 걸어둡니다 (저 동네 트랙백은 폼만 트랙백이군요 내부에서만 가능한 듯싶은 이러니 언론사 홈페이지가 외면을 당하지 포털 탓만 할 일은 아니라는) 
  1. 물론 어딘가에는 그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미네르바가 활용한 데이터가 '아무나 볼 수 없는 고급정보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런 넘이 있다면 그건 정신 나간 넘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니면 대단히 무책임한 넘이겠거나요 단지 여기서는 그 자료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