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세계를 해석하는 입들은 지치지도 않네.
마이크 앞에서 짖어대는
늙고 노회한 여우와
그를 따르는 어리고 단순한 개들.

선을 말하는 입은
악을 말하는 입보다 삐뚤어지기 쉬우니,

기름기 흐르는 입술로 아름다운 말들로
대중을 속이는 당신.
박수 소리에 도취해, 자신의 위대함에 속아
스스로에게도 정직하지 못한 예언자.

겸손한 문체로 익명의 다수를 향해 다정한 편지를 띄우지만,
당신처럼 오만한 인간을 나는 알지 못하지.
당신보다 차가운 심장을 나는 보지 못했어.

계산된 '따뜻'에 농락당했던 바보가 탄식한다
늦었지만,
순진을 벗게 해줘서 고마워.
선생님.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중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여우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중에서

 

시을 읽으며, 

부끄러워진다. 안다. 왜 부끄러운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저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