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변신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by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중에서
돼지의 변신, 최영미 <돼지들에게>
최영미 시인의 이 시 돼지의 변신을 두고 말들이 많다
시에서 그려지고 있는 저 '여우가 된 돼지'가 이번에 고인이 된 신영복 선생이라는 등의 얘기다
그러나 그런 소문들과는 별개로 이 시는
이 나라의 현 상황을 매우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참여적이고 의미있는 시라고 봐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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