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김한길을 보면 '서울 깍쟁이'란 말이 먼저 떠오른다. 김한길의 일기를 처음으로 접한 건 10여년 전이었다. 문학사상[각주:1]에 연재되고 있던 그의 <병정일기>[각주:2]를 통해서였다.[각주:3]

<눈뜨면 없어라>를 읽으면서 '서울 깍쟁이'라는 저 말을 떠올렸다.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일기에는 당시 내가 반감을 갖고 있던 먹물들의 제조건이 여러번 내비치고 있었다. 가식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하여튼 그런.

에니웨이, 당시 그는(혹은 그의 일기에 드러난 그는) 내가 싫어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그의 저 깍쟁이 기질이었다. 세상의 모든 잇속에는 다 관심없는 듯, 초탈해 있는 듯 하지만 가만 보면 실제로 제 잇속은 다 챙기는, 그런 서울 사람 기질이 그에게는(혹은 그의 일기에는) 다분히 함께 하고 있었다.
 

김한길의 눈뜨면 없어라

김한길의 <눈뜨면 없어라>


김한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가 대단히 선량한 사람으로 여긴다. [각주:4]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그는 언제나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는다. 제법 심각한 얘기라도 해야 할 때가 오면 얘기를 돌리거나 가볍게 터치하고 넘어가버린다. 일기 속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속내는 그렇게 감추고 있다. 정작 중요한 얘기들은 모두 그렇게 호도해버린다.

자신이 나갈 구멍은 다 챙겨놓고 하는 얘기에서 신실성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 얘기들이란 도대체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유의 가벼운 터치로 세상을 스케치하며 어떤 반론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 김한길의 글쓰기가 바로 그런 유형에 속한다.

이른바 잘 나간다는 이들의 행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저들 모두에겐 엇비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가벼운 터치로 그리기, 혹은 코믹하게 그리기, 혹은 초연한 척 그리기.. 그런 것들이다.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즈음 박광수인가 하는 이의 그림이 상당한 인기라고들 한다. 난 동아일보를 보는 터라 조선일보에 연재되는(맞나?) 그의 만화를 볼 일이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짜다 접하게 되는 그의 그림 이야기를 보면  그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그렇게 세상 만사에 모두 능할 수 있는 것인지.. 그 나이에 말이다.

그의 몇 컷짜리 그림 이야기 속 세상은 그렇게 단정하고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다. 순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것인지.. 자주 엄청 헷갈리는 대목이다. 무튼,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즘은 동아일보에도 그 비슷한 그림이 연재되고 있다. 듣기로는 그것도 상당히 뜨고 있는 모양이고.

암튼, 이런 얘기들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뭐냐면..
이것 역시 예를 하나 들어 말하는 게 나을 성싶은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늘자 신문에, 어느 국어 강사가 하이텔에서 폭력교실이라는 테마로 글을 쓰는데 하여튼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그 인터뷰 기사에서 그 강사는 그런 말을 했다. 심각하게 혹은 진지하게 접근하는 법 대신에 가능한 한 과장되고 코믹하게 그리려 했다고. 이유는 정공법으로 접근하면 즉각적인 반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내 얘기는 그러니까.. 그런 글은 도무지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글은 누군가가 시비를 걸올라치면 그냥 한 마디만 해버리면 된다.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조크 한 번 해본 거라니까. 에이~ 이 냥반은 유머 감각이 없으시네. 걸 뭐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구랴. 촌시럽게.
 
저들에겐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한없이 열린 담론의 장에 저들은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다시 에니웨이,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 사람의 글에 나타나는 저 가벼운 기교가 싫다. 거기서 자꾸 어떤 '위선'이 읽혀서다. 혹여 김한길의 저런 가벼움에 속는 이가 없기를. 배부른 자의 허영을 좇다가 그 골의 깊음에 절망하게되는 독자가 없기를. 세상을 가볍게 대하고 결정을 내리는 바보가 있다면 그는 필경 가슴에 대단한 피멍 하나를 간직해야 할 것이다. 나와 같이 단순한, 말하는 모든 거를 액면 그대로 믿는 바보는 말이다.
 
서울 깍쟁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저 얄팍한 자기 변명 외에는.
도대체가 어떤 사태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다. 그들의 혹은 그의 시각에는.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글로 썼다면 거기에 대한 비판은 없을 수가 없다. 왜냐면 씌어진 글은 그것이 언제나 닫혀 있음을 전제로 하는 때문이다. 그것은 그 한계로 인해 항상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영리한 이들은 이같은 비판의 칼날에서 늘 한켠으로 비켜나 있다. 처음부터 비판 받을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때문이다. 전형적인 서울 깍쟁이들의 글쓰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론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켜버리는, 바운다리를 두지 않고, 한없이 열어두고 하는 글쓰기.

이 책과 같은 공개 일기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에 얼만큼의 자기 진실이 담길 수 있을까?

"이군, 친구들이 소탈한 체하고 털어놓는 연애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게. 정말 소중한 얘기는 그렇게 아무한테나 쏟아놓지 않는 법이야. 설사 하더라도 에누리를 두는 법이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서울내기 정선생이 주인공 이명준에게 하고 있는 말이다. 하물며 이 글의 필자는 그보다 더한 서울 깍쟁이다. 서울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자체 검열에 의한 중략)

하지만 그는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 고백을 한다는 건, 저쪽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그의 함부로 쏟아놓은 젊은 날의 허드렛말을 너무 요란한 치장으로 내놓는 일에는 좀더 신중해야 했다는 생각이다. 하긴 <광장>의 얘기를 한번 더 인용하여 말해 본다면, 이즈음의 사람들은 도무지 '사무치는 이야기 같은 것에는 밥맛없어 하는 사람들'이니 그저 적당히 속내를 감추며 얘깃거리 만들어 가는 재치가 꽤나 흥겨운 것일 수도 있는 것이긴 할 터다.

 

김한길


김 한 길
이렇게/웃기는/슬픈/아름다운/고백은 없었다.

번쩍이는 금박 위에 박혀있는 이 문구는 분명 장사치의 과장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안쓰러움을,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싶다. 김한길의 일기에서 그렇게 신실하지 못한 사람의 기교만을 보게 됐다면 그러나 그건 너무 비약되고 악의에 찬 악다구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1997>



<덧2> 특별히 책 내용에 대한 얘기도 없고 한 터라, 댓글에서 어느 분이 인상깊게 읽었다는 이 책의 '에필로그'를 서비스로 추가했습니다. <내용 퍼온곳> http://blog.timelife.co.kr/ceo/50
<덧3> 아래 이정환님이 언급하고 있는 '집시부부 이야기'는 아래 주소에서 듣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reading&y_number=19&nnew=2

<덧4> 김한길은 여러 면에서 이문열을 생각하게 하는 이다. 같고 다름 모두에서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한 사람은 북한에서, 한 사람은 남한에서 자기 길을 갔다는 점에서 살짝 다를 뿐이다. 두 사람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벗어나는 과정에서 또한 서로 같고 다르다. 특히 아버지를 벗어나는 과정과 거기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아도 충분할 정도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덧5> 김한길이 2001년 구로을 재선거에 나섰을 당시 선거 기획안을 하나 넣은 적이 있다. 지역구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잘못되었다는 분석을 담아서였다. 그거 받아들였으면 국회에 입성했을 터다. ^^  

  1. '이었는지 한국문학이었는지 확실치는 않다'고 적었는데, 김한길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문학사상이다. - http://hangillo.net/05edition/images/main_sub/m_sub1-1.swf [본문으로]
  2. '눈뜨면 없어라'라는 이 책의 제목은 책으로 펴내면서 붙인 이름이다.고 글을 올리면서 주석을 달았으나. 잘못 적은 것이다. 이정환님이 <눈뜨면 없어라>는 <미국일기>를 펴내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일러주셨기에 바로잡는다. 고맙습니다. (_ _) [본문으로]
  3. 근데, 하도 오래 전의 일인 터라 이 부분에서 몇 가지가 막 헷갈린다. 특히 <병정일기>와 <미국일기>를 읽은 시점 등에서 그렇다.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엄밀한 책 소개를 하는 글이 아니고, 책을 빌어 하고싶은 얘기란 다른 데 있으니까. 하면셔.. 담 넘어가듯. -_-
    <덧> 지금 보면 이 부분은 그냥 주석으로 처리되었어야 할 내용이다. 하지만 감정이 먼저 나서 건들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_- [본문으로]
  4. 이는 책의 제목으로 살짝만 검색해봐도 이내 알 수 있다. 다음은 출판사의 소개글이다.
    김한길이 1981년 6월 미국에 건너간 뒤 첫 한 해 동안의 기록인「미국일기」는 ≪문학사상≫에 2년 간 연재된 뒤 1983년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발간됐다. 이후 1993년에는 『눈뜨면 없어라』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간돼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한길은『눈뜨면 없어라』의 서문에서
    「내 젊은 날 가장 힘들고 막막했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밝히면서,「이 일기를 쓰던 동안에는 내가 선택한 삶에 내가 자신이 없었다. 미국 땅에서 쓸데없는 세월을 보내며 망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롭고 불안하였다」고 쓰고 있다.
    루머처럼 전설처럼 아직도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들,
    수많은 가슴에 감동을 뿌렸던 김한길의 낮은 목소리
    「눈뜨면 없어라」는 인생의 거창한 진리나 도덕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김한길은 애초부터 무겁고 거창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김한길은 우리에게 들려주는 애기는 두통과 불면증, 변소, 열쇠, 발톱 없는 고양이, 글씨를 못 쓴다고 핀잔했던 아내의 옛 스승, 콘택트렌즈를 새로 낀 아내가 바라본 세상, 식욕과 졸음, 우울한 이유들, 때로는 비아프라의 기아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느 시인이 "통속 잡지의 표지 같다."라고 비유한 우리들 인생의 저변에 깔려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들의 의미가 작고 사소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그는 작고 사소한 것들의 갈피 속에 깃들인 결코 작거나 사소하지 않은 의미의 발견자이기 때문이다. / 해냄출판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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