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의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 삭제 건을 두고 인터넷이 난리다.

지난 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명박 정부의 고위인사가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사제단의 회견이 끝난 5분 후, 청와대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요지의 반박 성명을 냈다.

그런데, 7일 YTN이 '돌발영상'을 통해 청와대의 해명 내용이 사제단의 회견 1시간 전에 이미 나온 것이라고 폭로했다. 당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사제단의 회견 예정 시각인 오후 4시 이후에 보도해줄 것을 전제로 사제단 측의 주장에 대한 브리핑을 미리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의 동영상이다.




사실 이 동영상만으로도 문제가 시끄러울 판이다. 아니, 실제로도 무척 시끄러웠다. (`떡값명단` 돌발영상에 靑 대변인실 발칵) '삽질'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온몸으로 보여준 쾌거(!)였다.

솔직히 이동관 대변인이 엠바고를 들먹이며 '쪼개고 있는' '히죽이는고 있는' '눙치고 있는' 대목은 역겹기까지 했다. '프레스 후렌들리' 정신을 재확인하는 듯한 그 모습에서 '우리가 남이가'류의 조폭식 아우라가 엿보여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까지였다면 굳이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터다. 이미 수많은 네티즌이 이 문제에 대해 차고 넘칠 정도의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정작 더 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져나왔다. YTN에서 문제의 동영상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YTN은 자사의 웹사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포털에 올려진 동영상까지 모조리 내려버렸다. 의당 있어야 할 어떤 고지도 하지 않은 채로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같은 YTN의 행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다시 인터넷을 달구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YTN 시청자 게시판에는 동영상 삭제를 비난, 항의하는 목소리와 삭제에 관한 합당한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YTN 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조용하기만 하다. 돌발영상 삭제에 대해 YTN 의 해명을 요구하는 '이슈청원'까지 등장했지만, 그 흔한 공지 하나 올리지 않은 채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청자 쯤은 장기판의 '졸' 정도로도 보고 있지 않다는 안하무인의 자세고, 청와대의 저 오만함에 견주어 한 치도 덜하지 않을 오만한 태도다.

이같은 YTN의 행태로 미루어보건대, 내가 짐작하는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은 이렇다.

1.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이 있었다. 터뜨리면 100% 대박이 되는 엠바고였다.
2. YTN의 잔대가리 잔머리 굴리는 소리 잠시 들리고.. 돌발영상이 뜬다.
3. 엠바고 파기에 대한 언론으로서의 부담감과 정권에 대한 두려움이 동영상을 내리게 한다.

여기서 핵심은 2번 항목의 '잔머리'다.

YTN의 동영상은 전형적인 잔머리의 산물이다. 만일 YTN이 저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과 그것을 깨는 것 사이에서 언론으로서의 충분한 고민을 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의지하여 돌발영상을 만든 것이라면 돌발영상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터다. 그런 점에서 YTN의 돌발영상은 잔머리에서 나온 게 맞고, 그런 점에서 YTN은 영악했다.

또한 YTN은 비겁했다. 자기가 올린 기사(동영상도 기사라고 본다면)를 자기 손으로 삭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가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행동이다. 하물며 YTN은 이같은 행동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는 몰염치함까지 보이고 있다. 비겁한 짓이다.


"여론에 의한 정치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우선 여론을 형성하고 전하는 과정에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언론 매체에 의해 거론된 여론이란 신뢰성보다는 상업성에 우선하여 만들어지고 전파된 것이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대중과 영합한 사이비 여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 매체가 비단 금권과 권력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독자, 시청자와의 영합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올바른 여론을 위해서는, 건전한 언론 매체를 위해서는 그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때문이다."


위에 옮긴 글은 지난 1999년 NPC를 시작하던 때 쓴, '인터넷시대 여론, 누가 만들고 전파하는가 - 인터넷시대의 언론매체는 네티즌 독자와의 영합을 경계해야 한다' 는 글의 결어 부분이다.

10년이나 지난 글을 지금 다시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저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이같은 우려는 블로그에 저 글을 전재하면서도 밝힌 바가 있다.


(위의 '인터넷시대 여론, 누가 만들고 전파하는가'는) 다중의 의견이 자유롭게 소통되는 인터넷시대는 역설적으로 언론매체의 대중 영합적 경향성을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이다. (중략)
그때로부터 6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이 된 지금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는 처참하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언로가 마련되고 이를 통해 의견의 다양성이 최대한 발휘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자신이 지닌 선정 선동적 기능에 맛을 들인 인터넷매체는 언론이 지녀야 할 본연의 사명은 팽개친 채 대중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뉴스를 만들고 전파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는 몇 푼의 돈으로 언론을 손에 넣은(?) 포털이 있다.


오직 포털에 띄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기사가 있고, 그것을 유통하는 매체가 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영악한 기자고 매체들이다. YTN의 동영상 삭제 파문도 여기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한없이 영악하고 그지없이 비겁한. 언론이기를 포기했거나, 언론임을 망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