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저 자극적인 낚시성 기사는 어떻게 해결책이 없다는 말인가?" 

채리나가 공판에 참석했다는 단순한 내용을, '김성수 아내 사망'이라는 이슈어로 밑밥을 깔고 '채리나 끝내..충격'으로 마무리한 mbn의 낚시 기사에 '낚인' 어느 블로거가 또다시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해 내뱉고 있는 말이다


http://goodlsw76.blog.me/90163875903


대한민국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댓글을 달고 때론 블로그에 글을 써서 그 울분을 달래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낚인 기분만 더할 뿐 뾰족한 다른 대응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네이버와 mbn이 네티즌의 이같은 아우성 따위에 아랑곳할 리가 없다.

네이버와 mbn은 오늘도 가열차게 '충격'적 기사로 메인 톱을 장식하고 있다. 오후 3시를 갓 넘긴 지금 이 시각 mbn 한 언론사에서 본 '충격' 톱뉴스 기사만도 벌써 두 번째다. 

 

라리사 '알몸말춤' 추더니 끝내..'충격'2013.2.10.13:00 mbn 톱뉴스



'13세 여 성폭행' 고영욱 끝내 변호사가..충격!2013.2.10.15:00 mbn 톱뉴스



그렇다면, 저 블로거의 말처럼, 정말 저 낚시성 기사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혹은 네이버가 3월부터 선보이는 '뉴스 스탠드'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결책은 있다. 그러나 뉴스스탠드는 결코 그 해결책이 아니다. 

 
다음 세 가지 원칙만 확실히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네이버 낚시 기사의 90%는 잡을 수 있다.  

1. 기자의 이름이 없는 기사는 포털 메인에 노출하지 않는다.
2. 포털과 언론사의 톱뉴스가 서로 다른, 이중적 헤드라인 기사는 배제한다.
3. 언론사가 속한 카테고리에 맞지 않는 기사는 배제한다.

 

자세한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평소 이 문제에 천착해온 이라면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이제 하나씩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뉴스 스탠드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뉴스 스탠드는 네이버 뉴스가 낚시질의 온상이 된 그 원인을 (애써?)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에 천착하지 못한 해법은, 그게 무엇이든 바른 해법일 수가 없다. 이건 그냥 상식이다. 

네이버 뉴스가 낚시질의 온상이 된 이유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네이버는 더 잘 안다. 언론사의 페이지뷰 늘리기가 제일 원인이다. 그럼에도 네이버는 모르는 척 짐짓 딴청을 부리고 있다. 왜일까?

언론의 삐끼질을 질책하는 소리가 높다. 앞서 언급한 블로거 역시 오유나 디시 회원들보다 못한 기자들의 '낚시질'에 분노를 터뜨린다. 기자라면 언론고시를 통과한 엘리트고 충분한 트레이닝까지를 거친 프로페셔널들인데 고담준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오유나 디시 폐인들도 안 하는 삐끼질로 허구헌날을 보내느냐는 원망과 함께다.  

고담준론!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건 살아남은 다음의 일이다. 언론사 닷컴은 그야말로 날마다의 시시각각이 죽느냐 사느냐의 살아남기 전쟁터다. 여기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얘기는 그저 귓등을 스치는 한갓된 공자님 말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언론사는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간을 내어주고 쓸개를 빼주고서라도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해야 한다.

이 전쟁터에서 유일한 미덕은 유저의 클릭이다. 유저의 클릭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사는, 혹은 언론사 닷컴은 살아남지 못한다. 종이 신문이 신문의 발행부수로 영향력을 입증하듯 인터넷신문은 페이지뷰로 자신의 영향력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페이지뷰는 언론사 닷컴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광고 영향력의 거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유저의 클릭을 유도하고 인터넷신문의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이것이 언론사의 낚시질이 비롯되는 지점이자, 네이버가 낚시 기사의 온상이 되는 제일 원인이다. 


충격 고로케http://hot.coroke.net


얼마 전 언론사의 낚시 기사를 고발?하는 충격 고로케 사이트가 오픈되어 언론사의 낚시 기사에 낚여 허탈해하고 분노해 하던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마스터베이션(자위)에 불과하다. 우선은 시원하다는 느낌이야 주겠지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점에서는 어떤 유의미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언론사 닷컴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차적 경로를 통한 과외 유입에 쾌재(까지는 몰라도 '불감청고소원')을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충격 고로케' 서비스가 나왔을 때, 찬사를 보내면서도 '링크는 해제하라' 주문했던 까닭이다. 도대체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 하는 낚시질에 링크를 달아 그 낚시질을 도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그 낚시질을 비판하는 지점에서라면 더욱이나 그렇다.

언론사 닷컴의 낚시질이 도를 넘는 지경까지 치닫는 것은, 충격 고로케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비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낚시 기사에 대한 비판은 위의 블로거가 표출하는 분노에서도 드러나듯 이미 충분히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기사가 그치기는 커녕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그 비판과 분노마저가 실은 낚시 기사의 양산에 알게모르게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대적 공생관계. 의도했건 아니건,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고로케는 기껏 유저들에게 작은 재미로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언론사 닷컴과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다시말해 고로케가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충격 언론은 그만큼 더 많은 과외의 클릭을 이끌어내고, 그래서 결국은 언론사 닷컴의 낚시질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는 댓글 하나 달지 않던 사람이 낚시질 기사에 분노하여 기어이 댓글을 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익히 알고 있겠듯이, 그런 행동이야먈로 낚시질에 날개를 달아주는, 낚시 기사가 원하는 바로 그 행동에 다름 아니다. '충격'이란 단어를 쓰는 유일한 이유는 클릭을 유도하는 데 있다. 그런데 고로케나 분노의 댓글을 다는 네티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클릭을 유도하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이래서는 답이 안 나온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이 문제를 대할 때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언론사 기자들이 그렇게 만만한 친구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명색이 언론고시를 통과한, 나름 다들 한가닥씩 한다는 친구들이다. '낚시질이나 하는, 오유나 디시 폐인보다 못한 형편없는 기자들'이라며 함부로 싸잡을 수 있는 허접한 이들이 아닌 것이다. 이같은 인정이 있음 다음이라야 '왜 낚시질이 그치질 않는가'에 대한 합리적인 답이 나올 수 있다. 

분명히 하자. 기자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낚시질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따위의 얘기는 그걸 지적하는 비전문가(일반인)들보다 기사에 관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몰라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미 그게 나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주구장창 "그것은 나쁜 짓이야" "그래서는 안 돼" 따위의 지적질을 해대는 것만큼이나 한갓되고 웃기잡는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하기 짝이 없는 노릇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낚시 기사에 대응해온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 투비컨티뉴드 

 

세계최초 기자평판 서비스뉴스로그가 뭐냐고 물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