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과 일치하고 그 스스로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드러난다.

돌멩이가 떨어지는 것은 그것이 무겁기 때문이며,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사랑을 배운 바람둥이 아가씨는 사랑의 괴로움에도 이내 익숙하게 되며, 참다운 정열을 알만한 무렵의 나이에 이르면 새로운 것에 대한 매력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게 되고 만다. 그러나 연애 소설조차 한번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경우에 맞게 되는 모든 게 새롭게만 보인다.

여자의 마음이란 쉬이 변한다. 이를 믿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미움의 감정을 버리는 데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름다운 여자들은 우선 그 표정부터 늙어버리고 만다.

결혼 후에 연애에 빠지지 않는 여자란 오직 메마른 감정을 지닌 여자뿐이다.

아랫사람의 경우, 훌륭한 추론은 죄가 되기 쉽다. 뛰어난 추론은 늘 상대의 비위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대의 눈에 누군가가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거든 그의 모든 계획과 욕망 앞에 장애물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만일 정말 재능이 있는 이라면 그는 그 장애물을 쉽게 극복하거나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라면 도태될 것이고, 용감한 인간이라면 혼자서도 곤란을 극복해 갈 것이다.

모든 참다운 정열이란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공손할 수 없는 말과 태도이나 그것이 바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르고 넘어가고, 출세하고 싶은(처세에 능한) 사람은 알고서도 넘어가주는 그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새로운 동안에만 아름답다.

 

스땅달 <적과 흑> 표지스땅달 <적과 흑> 표지

 

위대한 일 가운데 그것을 시도하려 할 때 극단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 있었던가? 위대한 모든 행위는 그것이 일단 이루어진 이후에야 비로소 범인의 눈에도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법이다.

기병대의 선두에서라면 시퍼런 칼날의 번득이는 위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혼자서 겪어야 하는 위험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머리에서 비롯된 사랑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보다 확실히 아기자기한 맛은 더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흥분에 지나지 않는다.

천재가 지닌 자질 중의 하나는 평범한 인간들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큰 길을 가면서 주위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그 거울을 통해 푸른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진흙탕을 볼 수도 있다. 그런 거울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독자들에게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의 거울은 진흙탕을 비춘다. 그래서 독자는 거울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차라리 진흙탕이 된 한길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진흙탕 그대로 내버려 둔 도로 감독을 비난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불행은 사람의 마음을 무디게 만든다.

자존심이 강하고 팔팔한 사람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다른 사람에 대한 격분 사이에는 대개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경우 미친 듯이 화를 낸다는 것은 강렬한 쾌감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짓을 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반드시 악의에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라는 것은 문학의 목에 달아맨 돌멩이 같은 것이다. 반 년도 못 가서 문학을 물 속에 가라앉힐 것이다. 상상력의 흥미에 정치가 뒤섞인다는 것은 음악회에서 총소리를 듣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권총 소리는 결국 아무 힘도 없을 뿐더러 매우 시끄럽기만 하다. 이 소리는 어떤 음악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정치라는 것에 독자의 반 수즘은 분노할 것이고 조간 신문에 실린 정치기사라면 특별한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도 이 소설 속에서 읽게 되면 그저 싫증이 날 뿐이다.

말수를 줄이고 행동을 삼가라. 이것이 연애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다.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재산이나 신분을 타고난 여자는 항상 자기 자신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들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출세한다.

여론의 지배가 자유를 보증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불합리한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때로 불필요한 일에까지 간섭한다. 이를테면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간섭하는 것이다.

호랑이와 매우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어느 영국 여행가의 경험담이 있다. 그는 호랑이를 기르며 호랑이와 같이 놀기도 했는데, 그는 책상 위에 늘 장전한 권총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사냥꾼이 숲속에서 총을 쏜다. 목표물이 쓰러진다. 포수가 그것을 잡기 위해 내닫는다. 급히 달리는 포수의 발길에 채어 개미집이 부서지고, 개미떼와 그 알들이 산산히 흩어진다. 그러나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을 개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최고의 지성을 지닌 철학자 개미도 방금 자신들에게 닥친 그 시커멓고 거대하고 끔찍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사냥꾼의 장화였다. 갑자기 불꽃이 튀고 벼락같은 소리가 난 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장화가 그들의 거처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죽음이나 삶이나 영원이라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큰 조직을 지닌 존재에게는 그 모든 것은 아주 간단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살이는 한여름 아침 아홉 시에 태어나 저녁 다섯 시면 그 생을 마감한다. 그런 하루살이가 어찌 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다섯 시간만 더 살 수 있더라도 하루살이는 밤을 이해할 수 있으련만.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도 아직 위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사람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나대로의 죽음을 택하고 싶다.

너의 많은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너는 전생에 많은 사랑을 했으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알 수 있는 존재이다."
- 스땅달의 "에고티즘의 회상" 중에서

"이 여성들의 대부분이 나의 사랑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여자들은 나의 생애를 지배했다."
- 1835년 9월, 그의 나이52세 때 스땅달이 알바노 호수가를 거닐면서 모래 위에 12명의 여인 이름의 첫글자를 쓴 다음 했다는 말이다. (어느 기사 중에서)

"앙리 베일. 밀라노 사람. 쓰고 사랑하고 살았다."  - 스땅달의 묘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