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를 읽으며 드는 생각 - 우리 사회에도 탁월한 감각적 글쓰기 능력을 가진 이들은 많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한갓된 자신의 틀을 벗지 못한 채 사변 수준의 자기 주장만을 되뇌고 있다는 것.
이 책은 단숨에 읽힌다. 저자의 글이 워낙 뛰어나서겠지만 번역이 잘 된 덕분이기도 할 터다. 다만, 옥의 티가 하나 있다. liberalism을 진보주의로 옮기는 대목에서다.
"지금 실천하는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이고,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당파성을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마지막 단락이다. 여기서 진보주의자와 진보주의 운동가는 각각 뭘 옮긴 말인지 모르겠다. liberalism을 진보주의로 번역한 그 고충은 이해할만은 하다.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한 자유주의자의 양심'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원제를 버리고 굳이 이상한 제목을 내건 이유도 짐작할만하다.
내가 보기엔 역자의 오버다. 지나친 개입이며 무엇보다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번역 태도는 아니어 보인다. 결국 원문을 옆에 두고 읽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할 정도로 흥미로운 책이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표지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다.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 학군들은 줄고 있으며, 부근의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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