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오늘 새벽 신제품 아이폰7, 7+를 발표했다. 동시에 언론사도 송고 전쟁을 시작했다. 첫번째로 나온 기사의 제목은 올해도 역시 동일했다.  

 

"아이폰7, 혁신은 없었다"

 

아이폰7 혁신은 없었다"아이폰7, 혁신은 없었다"는 제목으로 쏟아져나온 기사들

 

심지어 특정신문의 경우는, 한창 키노트를 진행 중인 시각에 기사 전문을 송고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다음 기사는 조금씩 수정되었다.

이에 대해 어느 네티즌은 "애플발 기사들, 올해도 역시 혁신은 없었다"는 촌철살인의 쓴소리를 남겼다. 또다른 네티즌은 "연례 행사다. 기자들은 아마 아이폰10까지 같은 제목을 적어놨을 것이다"며, 매년 똑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찍어내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웃었다.

왜 이럴까?
도대체 기자들은 왜 이런 기사를 만드는 걸까?

팔리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먹고사니즘 때문이다.

언론사도 먹고 살아야 한다. 팔리지 않는 기사는 당장 회사의 재정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이내 기자의 생계를 위협한다. 기자는 시장에서 어떤 기사가 잘 팔리는지를 알고 있다. 독자들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내놓아야 할 때가 있다. 세계적인 회사가 신제품을 발표하거나 하는 날, 바로 오늘같은 날이다. 기자가 보기에 오늘 독자가 원하는 기사는 확실히 "혁신은 없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독자가 원하는 기사는 팔리지만, 독자가 원하지 않는 기사는 팔리지 않는다. 팔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면 당한다. '혁신은 없었다'는 기사에는 악성 댓글이라도 달리지만, 독자의 기호를 저버린 기사는 무플과 무전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포털에 기생하는 우리 언론의 구조적인 한계이자 문제이다.

 

아이폰7iPhone, This is 7.

 

p.s.

아침 출근길에 야구해설가 하일성씨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채무 관계에서 비롯된 자살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먹고사니즘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하일성씨의 자살 소식을 라디오로 듣다 생각했다. 우리가 기레기라 부르며 비난하는 기자 또한 결국은 먹고사니즘을 위해 쓰는 것이다. 하는 생각. 먹고사니즘을 위해 뛰는 모든 기자에게 신의 은총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