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걸배이 근성이 강하다

제목이 살짝 '거시기'합니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자주 쓰는 말이니 개의치 않고 가겠습니다. 제목 자체가 료해 안 되는 분들이 있을 것같아서 잠깐 설명을 하고 가자면, '걸배이'는 '거지'의 다른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빌어먹고 사는 거지 근성이 강하다' 정도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글은 일종의 후기입니다.
그만님의 "우리나라 사람 생산에 익숙치 않다"는 포스트에 강한 '삘'을 받고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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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처럼 습관적으로 메일링을 타고 들어갔다가, 저 글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무슨 '뻥'이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진 그 느낌이었습니다.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전율.

'독고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 며칠 사이 갑자기 블로고스피어에서 자주 듣보는 말입니다.

저 말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에야 덜 하지만, 예전엔 주변에서 흔히 듣보던 말이고, 특히 제 경우는 학교 다닐 때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 대상이 되어 자주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독불장군'의 다른 버전이었으니요. 하지만 뭐 크게 거슬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말이 주는 느낌이 그렇게 싫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고다이'라는 말이 내게 주는 느낌은 늘 '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홀로'라는 데서 오는 일종의 '쓸쓸함'이 담긴. 언젠가 박목월이 얘기한 '불우감' 비슷한. [각주:1]

독고다이, 그 고독한 행보에 대하여 

그랬습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던 것은 그러니까 내가 오랜동안 천착해왔으면서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들을 저 책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둔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는, 그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게 내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과 거기서 오는 모종의 안도감(?)이었다고나 할까요. 무튼, 그런 생각이 들어 밤을 새워 읽었댔습니다

오늘 그만님의 포스트를 보면서 공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는 생산의 문화가 아니에요. 위키도 그렇고 뭐든 문화를 수입하기만 하죠. 미국에서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인구대비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아요. 우린 배워서 오는 사람들이죠. 우리나라 문화가 새로 만들어져서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철저하게 우리나라는 문화 수입국입니다."  _ http://ringblog.net/1506


'문화 수입국'이라는 말에 필이 꽂혔댔습니다. 기생의식, 기생질, 기생층, 기생 같은 말들을 저 의미연관에서 해오던 터여서였지요. 어제만 해도 민노씨.네서 저 얘기를 하다 왔습니다. 살짝 삐딱선을 타고 있는 댓글이라 옮기기 거시기하긴 하지만, 글이 서 있는 지점은 동일합니다. [각주:2]

민노씨.네는 '진보를 통한 블로그 혁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름의 모색인데,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대고 혁명은 '이른바 진보'가 '진보'만 되어도 가능한 일이라는 댓글을 달았댔습니다. '이른바 진보'가 빠져 허우적이고 있는 '기생질'에서만 빠져 나와도, 그것이 곧 혁명일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며칠 전에 민노씨.네가 여기서 "(하민혁은) 워낙에 기존의 지배적 관념을 (제가 보기엔 다소 과도한) 원칙론(혹은 역설적이게도 현실론)으로 비틀어 달리 판단하곤" 한다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각주:3] 놀랬습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있어서였습니다.

지극히 원칙적인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원칙론 혹은 현실론"은 나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이면서 또한 동시에 나를 있게 하는 원동력인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하민혁의 딜레마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민노씨.네가 정확히 꿰뚫어 지적을 한 것입니다. [각주:4]

그렇습니다. 나는 자주 원론적인 얘기를 늘어놓습니다.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원칙을 따지고 듭니다. 이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도 하민혁은 지나치게 원칙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 배경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하민혁은 지극히 현실적인 넘입니다. 민노씨.네가 그랬듯이, 살짝 한번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이내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뜬구름 잡는 얘기 하는 친구들입니다. 블로그에 있는 몇 개의 포스트나 댓글만 읽어도 익히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위에서 '딜레마'라는 표현을 썼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건 딜레마가 아닙니다. 역량이 안 되는 탓에 이를 풀어 설명하는 데에 이르질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기생의식은 사이비 보수와 얼치기 진보가 낳은 기형의식이다  

진보건 보수건을 떠나서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들입니다. 원칙에 충실하면 이내 해소되거나 성립조차 되지 않을 문제들이 눈앞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내몰리면서 결국 문제 아닌 문제를 양산해내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입니다. 자신이 말한 것을 자신이 잡아먹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결국 문제 자체를 형해화해버리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컨대, 보수를 말하는 이가 전통을 깨부수는 데는 먼저 나서고 진보를 말하는 자가 청동기 시대로 돌아가지 못해 더 안달해 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이 뿐이라면 말도 안 합니다. 이들은 허구헌날 기생질을 일삼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자신들의 비전이나 논리는 보여주질 못한 채, 허구헌날 원산지도 불분명하고 해석조차가 제멋대로인 '수입산' 비전과 이론들을 놓고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날을 지샙니다.

이런 얘기의 종착점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바로 자신이 한 말을 자신이 잡아먹는 결과입니다. 종국에는 도대체 어느쪽이 보수고 어느쪽이 진보인지를 모를 판이 되고 맙니다. 자기 원칙만 제대로 고수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문제를 만들어서 말 그대로의 흰 까마귀인지 검은 까마귀인지 모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례를 찾아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블로고스피어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얼치기 진보, 블로고스피어의 기형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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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진보를 부르대고 있지만 하는 짓을 보면 어떻게 이런 꼴통이 있나싶을 정도의 어처구니들로 넘쳐납니다. '소통'하자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일수록 댓글이나 트랙백 차단에서는 귀신같이 빠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르다싶으면 여지없이 차단해버립니다. 만일 그 빠르기로 진보를 가르는 거라면 귀신같은 그 신속함에서는 영낙없이 진보인 게 맞다 해도 좋겠습니다.

깡통같은 논리에 동문서답인 대화도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말도 안 되는 헷소리를 '상식'이라고 강변하면서도 그게 왜 상식이냐고 묻기라도 할라치면 이런 '상식'을 모르는 몰상식한 넘이라면서 뒷골목 양아치들마냥 종주먹을 들이밀며 달겨듭니다. 이런 좃선 같은 넘, 이런 한나라당 같은 넘, 이런 쥐박이 같은 넘.. 하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되뇌면서.

이들의 머릿속에 든 진보라는 개념은 그러니까 기껏 이런 것입니다.

진보의 이념이나 비전, 뭐 이 따위는 알지도 못 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누가 뭐라 하건 그 대답으로  "이런 좃선 같은 넘, 이런 한나라당 같은 넘, 이런 쥐박이 같은 넘.." 만 열심히 외쳐대면 '진보의 전위'가 되는 그런 진보인 셈입니다. 맨날 똑같은 주문으로 스스로의 믿음을 강제하는 광신교도 집단에서나 비견됨직한, 도대체 대화라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족속들입니다. [각주:5]

한국의 위키피디아, 집단지성을 묻다  

애니웨이, 다시 그만님 얘기로 돌아가보면, 이같은 현상은 위키 문제의 경우에도 일정 부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때 위키에 참여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하고 있는 일 쪽에서 더러 정보가 빈약하다 여겨서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온라인의 특성은 '괴짜'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미 너무 '격식을 따지고 객관성을 따지고 복잡한 규율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활성화가 잘 안 된다."

그만님의 글에 나오는 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올리면 이내 삭제하고 다시 바꿔서 올려도 또 삭제하고 하는데, 대체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내가 보기에는 운영진이 기껏 학부 아니면 대학원생으로 이루어진 듯 한데 이들의 개입과 간섭이 거의 전횡에 가까웠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법한 사항도 그들은 몇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삭제를 일삼았습니다. 그러려면 거기에 오픈 백과라는 타이틀을 달 일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냥 몇몇 운영진의 이름을 거는 게 차라리 낫지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진보, 기생의식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진보의 의의 혹은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진보를 말할 때 떠올리게 되는 으뜸 가는 덕목은 '자유함'입니다. 자유한 의지, 자유한 상상력, 자유한 표현과 행동이 배제된 곳에서 운위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닙니다. 사이비일 뿐이지요.

자유함은 기생의식에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빌어먹고 사는 이들의 최고 행동 준칙은 어떻게든 빌붙어 사는 주인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묻는 주체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 뿐입니다.  

마르크스가 어쩌고 레닌이 어쩌고 김일성 어버이 수령이 어쩌고 공산당 선언이 어쩌고 자본론이 어쩌고 자본주의가 어쩌고 제국주의가 어쩌고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사회주의가 어쩌고 사회민주주의가 어쩌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어쩌고 해체주의가 어쩌고 체 게바라가 어쩌고 라깡이 어쩌고.. 진보가 어쩌고 보수가 어쩌고..

무튼, 주구장창 뭐라고들 뭔가를 읊고 있지만, 여기 어디서도 그들의 논리나 비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수입을 허하여준 주인에 감사하며 개처럼 짖어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기생층의 젖을 빨고 사는 강아지들이 허구헌날 짖어대는 레파토리 또한 늘 똑같습니다.

이명박이 저쩌고 쥐박이가 저쩌고 명바기가 저쩌고 명텐도가 저쩌고 경상도가 쩌쩌고 대운하가 저쩌고 청와대가 저쩌고 딴나라당이 저쩌고 한날당이 저쩌고 수구가 저쩌고 꼴통이 저쩌고 친일파가 저쩌고 독재가 저쩌고 박정희가 저쩌고 이승만이 저쩌고 언론이 저쩌고 좃선일보가 저쩌고 조중동이 저쩌고..


기생의식에 찌든 기생질이자, 한국에서 진보연하며 먹고사는 기생층들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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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글> 그만님의 글을 오독한 거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왜냐면, 그만님이 전하는 얘기의 논점은 '기생질'이 한국 문화의 특질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과 내 얘기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서 있는 지점이 서로 다른 때문입니다. 그는 학자이기에 분석을 한 것이고, 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므로 기생의식을 타파하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덧2> 이 글의 원래 제목은 "한국인은 걸배이 근성이 강하다"였습니다. 이게 적합한 제목이라 여기지만,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기 위해 현재의 제목으로 바꾸었습니다.  


  1. '독고다이'를 '고독이다'로 풀고 있는 이가 있더군요. http://minoci.net/735#comment16463 [본문으로]
  2. http://www.minoci.net/736#comment16466 [본문으로]
  3. http://blog.mintong.org/456#comment3309 [본문으로]
  4. 언젠가 인/사 쟁토방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5. 이런 이들은 자신은 도대체 듣도보도 못한, 입에 담기조차 힘든 온갖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주제에 국민의 천민의식을 개조하겠다고 설치고 다닙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하지만 뭐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건 진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개인의 인성 문제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도대체 그 인성에서 나올 수 있는 의식이 얼마나 진보에 값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개조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그 천박하고 부박한 의식일 듯싶어서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