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이 '우리 기자들 참 큰일이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글 하나만 올려도 '정치 재개한다'는 등의 말을 기자들이 자꾸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우리 기자들 참 큰 일이다는 저 짧은 말 속에 담긴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읽힌다. 공감한다. 내가 봐도 '우리 기자님들 참 큰일이다.' 문제 많다.

안타깝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힘들다'고 말한다. '감옥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이건 '푸념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래서다. 그 진심이 그대로 읽혀서 안타깝다.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야 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노무현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웬 노무현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통)의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때 그걸 본 아이 엄마(이 방에는 거의 잘 안 들오신다)가 하는 말이다. 대통령 할 때는 가만히 있던 주제에, 이제 와서 노통 홈페이지는 왜 또 드다보고 자빠졌느냐는 의미일 터다.

그럴만도 하다. 노통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단순히 하나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대통령 '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_-;;

하지만 노무현은 보기좋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축하 인사를 남긴 다음, 이후 노 대통령에 대한 일체의 글쓰기를 접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라 여겼다. 그러니까 앞서 아이 엄마가 웬 노무현이야? 했던 건 이 지점과 관련해 나온 말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몇몇 곳에서 같이 일을 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가지 않았고, 아이 엄마는 이때부터 노무현의 '노' 자만 나와도 경끼(이거 오늘 어느 분이 블로그 댓글서 쓴 건데 금세 써먹는다)를 일으켰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말이 한창 유행할 때도 내가 들어야 했던 건 '이게 다 당신 때문이다'는 말이었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사연.. 있다.)

무튼, 이후 오랜 동안을 헤맸다.

'노무현은 아니다'는 내 판단이 틀렸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다른 블로그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 찾아보니 이 블로그의 댓글 가운데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옮긴다. 옮기는 글은 왜 노무현 정권을 까느냐는 어떤 이의 지적에 답하고 있는 글이다.

현 정권에 대해 해부하고 지적하거나 한 적은 없는데요?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에 몇 가지 해부와 지적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아마 그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이후 적어도 2년 반 동안은 쥐죽은 듯이 지냈지요.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어쨌거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그렇다면 내 분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게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일을 추진하는 마당에 그걸 일일이 해부하면서 딴지 거는 짓이 천성적으로 맞지를 않아서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적을 하려고 보따리 풀고 나선다면 누구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가는 방향만큼은 맞았다 싶기에(사실 그것도 노 대통령의 업적이라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 - 근데 이 분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게 마치 자신의 업적이나 되는 듯이 하고 있지요. 암튼) 죽어(?!) 지내는 겁니다.

- http://blog.mintong.org/126#comment272


에니웨이, 오늘 노통의 글을 읽고 있자니, 예의 저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지금 봐도 '깜냥'은 아니었지 않느냐는 얘기다. 노통의 글을 함 보자.

다음은 노통이 당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연속극 끝났는데.." 라는 글의 전문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가 말을 건다.

“당신 조금 전에 뉴스에 나왔어요. ‘정치 하지마라.’ 이런 글 올린 모양이지요? 정치 재개하나? 이런 말도 나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도 나오던데요?”

“현실정치 이야기 한마디도 안했는데? 정치는 무슨 정치요? 공연히 시비들이야.”

그랬더니 아내가 다시 받는다. “연속극하나 끝나고 새 연속극 하고 있는데, 자꾸 지난 연속극 주인공이 나오니 사람들이 짜증내는 거 아니겠어요?”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생각해 보니 나는 연속극에 나간 일이 없다.

“아니, 연속극에 나가기는 누가 나가요? 언론이 자꾸 나왔다고 쓰니까 사람들이 헷갈리는 거지.”

사실 그동안에도 글을 여러 개 올렸으나 현실 정치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하지 말란 법도 없지만 정치한다는 소리가 욕처럼 들려서 그랬다. 그런데도 내용에 불구하고 글만 올리면 정치 재개란다. 앞으로 문밖에 나가면 그것도 정치재개라 할 건가?

글을 안 쓰면 될 일이다. 그런데 홈페이지를 닫지 않는 한 회원들에게 인사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 힘들다. 감옥이 따로 없다. 푸념이 아니다. 우리 기자들 참 큰일이다.


딱 어느 시골 촌부의 저녁상 물린 풍경이다. 정겨운.

노통은 확실히 이 시대 민중(서민대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그 점에선 충분히 점수를 받아 마땅한 분이다. 이 나라의 이른바 좌파 진보 세력이 그토록 갈망하는, 그러나 결국 이루지 못한, 민중과의 소통을 이루어낸 분이기에 그렇다.

이를 반영하듯 노통의 저 글에는 '노짱님'을 외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다.

하나같이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과 찬사를 보내는 글들이다. 노통한테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노통의 저 소탈함은 나 역시도 높은 점수를 주는 점이다. 아니다, 나 또한 반할 지경이다. 지지자들의 경우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대통령의 직이 과연 이같은 감성과 거기에 기반한 호오만으로 수행함직한 직일까?

여기에 이르면 내 판단은 달라진다. '아니오'가 커지는 지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막 가자는 거지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등으로 대변되는 그의 감성적인 언어 퍼레이드다. 그리고 그 어름에서 나오는 것은 '노통은 대통령이 안 되는 게 더 나았다'는 판단이다.

이런 얘기 하면 으레 감히 우리 노통을 무시하냐는 등의 말이 나올 듯싶어 미리 말해두자면, 내 얘기는 그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노통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참 많은 일을 할 가능성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내가 보는 노통은 전투에서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드는 전사였다. 각 전투의 판세를 읽고 지휘하는 장군이나, 전쟁의 의미를 생각하는 통수권자가 아니었다.

노통은 퇴임 이후 기왕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노통은 지금 그곳이 감옥과 같다고 토로하고 있다.


노무현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왜 아니겠는가? 나는 노통의 저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얼마나 답답하겠나싶다. 그래서 슬프다. 물어뜯고 싸우기로 날을 지새야 할 싸움닭(투계)이 싸워야 할 곳을 잃고 한갓 농사꾼의 집 마당에서 모이나 쪼고 있는 신세가 되어 있는 짝으로 보여서다.

그러니까 한낱 기자의 기사 하나에 '참 힘들다'를 되뇌고 있는 노통의 발언에서 보게 되는 것은 저 싸움닭 기질의 확인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서 기대함직한 여유나 진중함, 그리고 포용력 따위가 아니고.

노통은 말한다. '회원들에게 인사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참 유치한 투정이다. 인사 하고 싶다면 그냥 인사 하면 된다. 그거 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다. 기자가 뭐라고 한다고? 아니,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다는 이가 그따위 기자 하나를 품지 못한다는 말인가?

매사가 이런 식이다. 굳이 토로하지 않아도 될 자기 감정을 노통은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내뱉는다. 하지만 세상에 자기 감정을 다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자기 감정을 다스리는 일에 엄격해져가게 된다. 자기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게 자기 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 때문이다.

그러길래 이같은 감정의 토로는 한 집안의 가장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짜증이 날 때마다 그것을 드러내고, 작은 불만에도 그것을 못 견뎌하는 하는 가장이 있는 집안이 평화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상의 상사나 오너가 사소한 일 하나에도 일희일비한다면 직원들이 좌불안석일 것임은 불문가지다. 하물며 한 나라의 통치자인 경우임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나는 노통이 자기 할 말 하는 노통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 만큼은 이제 좀 그만 두었으면 한다. 내가 보기에 노통이 하는 불평불만의 90%는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노통의 '연속극' 얘기로 돌아가보자.

노통은 뭐라뭐라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우리 기자님들 참 문제 많다'고 말하지만, 그렇기로 따지면 이 지점에서 노통은 문제가 더 많은 사람이다. 기자보다는, 그 문제 많은 기자 하나를 어찌 하지 못하고, 그 기자가 하는 기사 하나 가슴에 담지 못 하고 기어이 그걸 배설해야 직성이 풀려 하는, 기자 하나와 다툼을 벌이는 노통의 그 협량한 의식이 더 문제인 것이다.

기자가 뭐라 하건, 자신이 정치 안 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아닌 문제다. 개새끼라는 욕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개새끼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데 있는 게 아니고, 내가 개새끼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도대체 투덜이 스머프마냥 투덜거릴 이유도 비분강개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이런 사람이 한 나라를 책임지는 직의 대통령이었거니 싶어서다.  





<덧붙이는글> 올블에 글이 수집된 후에 실시간글, 라이브글, 전체글 등에서 위의 글이 사라져버렸는데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시스템의 문제인가싶기도 하고. 혹시 올블 관계자 분 가운데 이 글 보시는 분 있다면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봅니다.  
<덧2> 지금은 정상화되었네요.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갑자기 휙~ 사라져서요.